2013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을 때 일본 정부는 사상 최대 규모의 올림픽, 역대 최고의 경제 효과를 자신했었다. 하지만 7월 23일 막을 연 도쿄 올림픽은 유치 당시 일본이 꿈꿨던 모습과는 차이가 크다.
2015년 12월 일본은행은 올림픽 개최 효과로 2014~2020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5조~30조 엔(약 261조~313조 원) 늘어날 것이라고 추산했다. 2017년 3월까지만 해도 도쿄도는 올림픽 개최가 장기적으로 경기를 부양시켜 2030년까지 32조 엔의 경제 효과를 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한 해 3000만 명을 넘었던 외국인 관광객이 자취를 감추고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열림에 따라 ‘올림픽 특수’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가 많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7월 초 대부분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짐에 따라 경제 효과가 1조6771억 엔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이와종합연구소가 내놓은 올림픽의 경기 부양 효과는 3500억 엔(개최 기간 기준)까지 줄었다.
1년 연기로 개최비용 리우 넘어서
역대 올림픽 가운데 비용 대비 수익이 가장 뛰어난 ‘경제 올림픽’을 열겠다는 목표도 달성이 불가능해졌다. 일본 정부와 도쿄도는 기존 시설을 최대한 재활용해 개최 비용을 2012년 런던 올림픽과 2016년 리우 올림픽보다 줄일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1조3500억 엔이었던 개최 비용은 1조6440억 엔으로 불어났다. 런던(약 1조6000억 엔)과 리우(약 1조5000억 엔)의 개최 비용을 모두 넘어섰다. 1년 연기로 늘어난 비용은 2940억 엔, 이 가운데 960억 엔은 코로나19 대책 경비다.
무관중 개최에 따라 일반인에게 판매한 입장권 363만 장 가운데 97%가 무효화됐다. 유효 입장권은 4만 장에 그친다. 900억 엔을 기대했던 입장권 수입은 수십억 엔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역대 최고의 입장권 수입을 올린 런던(1090억 엔)은 물론 경제적으로 ‘흉작’ 평가를 받았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200억 엔), 2004년 아테네 올림픽(300억 엔)보다 벌이가 시원치 않다.
‘역대 최대 규모의 올림픽’도 물 건너갔다. 대회 관계자 수가 당초 예상했던 14만1000명에서 4만1000명으로 대폭 줄었고 참가 선수도 1만1090명으로 리우 올림픽을 근소하게 밑돈다. 관중 수는 역대 최소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33개 종목, 339개 세부 종목 경기로 펼쳐지는 경기 규모만 일본의 공언대로 역대 최대다.
일본 대표팀의 목표도 역대 최고다. 1964년 이후 57년 만에 홈에서 열리는 이번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팀은 금메달 30개를 목표로 내걸었다. 1912년 제5회 스톡홀름 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이후 일본 대표팀이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한 대회는 1964년 도쿄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16개였다.
하계 올림픽에서 100년 동안 딴 금메달(142개)의 20%를 한 대회에서 따겠다는 대표팀의 목표에 일본 내에서도 과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대회 초반 일본 대표팀은 금메달 13개로 종합 3위(7월 29일 기준)에 나서며 순항하고 있다.
일본 대표팀의 선전은 일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분석이다. 일본 스포츠청은 2021년도 올림픽 선수 강화 예산을 103억 엔으로 2015년보다 40% 늘렸다. 올림픽 선수 강화 예산은 각 경기 단체에 분배돼 해외 원정 경비와 경기력 강화를 위한 합숙에 사용된다.
이는 영국의 성공 사례를 모방한 제도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유치한 영국은 개최국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철저한 성과주의에 입각한 투자를 실시했다.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 자금을 집중적으로 몰아 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투자 방식 덕분에 영국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금메달 29개로 세계 3위를 차지했다. 4년 뒤 리우 올림픽에서는 27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종합 2위에 올랐다.
영국의 투자 방식을 본뜬 일본 정부도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종목을 ‘S등급’과 ‘A등급’으로 나눠 차등 지원한다. S등급 종목은 30%, A등급 종목은 20%씩 선수 강화 예산을 더 받는다.
S등급에는 야구·유도·수영·가라테·체조·육상·배드민턴·레슬링·스케이트보드·스포츠클라이밍 등 10종목이 선정됐다. A등급에는 탁구·테니스·배구·소프트볼·요트·역도 등 6종목이 포함됐다.
일본 금메달 100% 전략 종목에서 나와
7월 26일 기준으로 일본이 딴 금메달 8개 중 7개가 S등급, 나머지 1개는 A등급 종목에서 나왔다. 유도(4개), 스케이트보드(2개), 수영(1개), 탁구(1개)의 순이다.
포상금도 두둑하다. 일본올림픽위원회(JOC)는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 500만 엔, 은메달리스트에게 200만 엔, 동메달리스트에게 100만 엔씩을 지급한다. 각 경기 단체가 내건 포상금은 더욱 통이 크다. 육상·골프·승마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2000만 엔을 받는다. 배드민턴·탁구·가라테는 1000만 엔, 테니스는 800만 엔의 금메달 포상금이 별도로 걸려 있다.
탁구 용품 업체 빅타스는 일본 남자 탁구 대표팀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면 출전 선수 3명에게 1억 엔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거액의 포상금을 내걸고 금메달 30개를 휩쓸겠다고 공언하는 일본이지만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금전적으로 지원한 역사는 의외로 짧다. 일본 스포츠계의 뿌리 깊은 아마추어리즘 전통 때문이다. 다니가마 히로노리 도요대 교수는 요미우리신문에 “일본의 근대 스포츠는 메이지 시대 이후 학교 교육의 일환으로 발달해 왔기 때문에 경기 관계자들은 아마추어리즘을 신봉했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아마추어 선수들의 제전으로 여겼던 일본 스포츠계가 변한 계기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굴욕을 겪으면서다. 서울 올림픽에서 일본은 14개의 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개최국의 이점을 살려 종합 4위를 차지한 한국(33개)은 물론 중국(28개)에 비해서도 메달 수가 절반에 불과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의 성공 이후 일본은 20년 동안 아시아 스포츠의 최강국을 자처해 왔다. 하지만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중국에 메달 수 동률을 허용한데 이어 서울에서는 한국에마저 크게 뒤처지자 ‘이대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커졌다. 일본 미디어들도 앞다퉈 한국과 중국의 포상금 제도를 예로 들며 “스포츠계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여론을 받아들여 1989년 일본체육협회에서 독립한 JOC가 처음 내건 경기력 강화 대책이 포상금 제도였다. 포상금 제도가 처음 적용된 대회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 올림픽이었다. 알베르빌 금메달리스트의 포상금은 300만 엔이었다. 이 금액은 일본의 장기 경기 침체인 ‘잃어버린 30년’과 함께 24년간 동결됐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야 금메달만 500만 엔으로 포상금이 200만 엔 늘어났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까지 JOC는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에게 지급한 포상금은 9억 엔에 달한다.
1992년 알베르빌 대회만 해도 일본 조세 당국은 포상금에 대해서도 소득세를 매겼다. 하지만 같은 해 열네 살의 나이로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수영에서 금메달을 딴 이와사키 교코 선수에게 9만 엔을 징수한 것이 여론의 반발을 샀다.
결국 일본 조세 당국은 1994년 릴레함메르 동계 올림픽부터 JOC 포상금을 비과세로 인정했다. 경기 단체의 포상금도 500만 엔까지 비과세다. 단 스폰서 기업의 포상금은 전액 과세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