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렌탈이 ‘AA급 기업’의 지위를 지키는 데 성공했다. 한국 회사채 시장에서 신용 등급이 ‘AA-’인 롯데렌탈은 자동차 렌털 시장의 경쟁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수익성이 나빠지면서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달고 있었다.
이에 따라 한 단계만 신용 등급이 떨어져도 ‘A급 기업’으로 내려앉아 업계 1위 사업자라는 체면을 구길 뻔했다. 하지만 기업공개(IPO)와 수익성 회복 노력 등으로 ‘안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되찾게 됐다. 2년 만의 신용도 회복이지만 경쟁사들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신평사, 일제히 신용 등급 전망 회복
올해 8월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은 일제히 롯데렌탈의 신용 등급 전망을 기존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했다.
한국 신용 평가사가 부여한 롯데렌탈의 신용 등급은 ‘AA-’다. ‘AA’급 자체는 채권 시장에서 우량한 신용 등급으로 평가받지만 롯데렌탈이 자리한 ‘AA-’는 ‘AA’급 중에서도 가장 하단이다. 금융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을 때 기관투자가의 보수적 투자 기조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신용도라는 뜻이다.
또한 롯데렌탈의 신용 등급 전망은 하향 조정 가능성이 높다는 뜻의 ‘부정적’이어서 기관투자가로선 섣불리 투자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산운용사·보험사·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롯데렌탈의 회사채를 사들인 시점 이후에 신용 등급이 떨어지면 회사채 가격도 같이 하락한다. 즉, 투자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 확대를 위해 자금 조달이 필요했던 롯데렌탈에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한국 신용 평가사들이 최근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조정하면서 롯데렌탈은 채권 시장에서 굴곡진 신용 등급의 역사를 지닌 기업 중 한 곳이 됐다.
롯데렌탈은 2005년 KT네트웍스에서 렌털 사업 부문이 인적 분할돼 설립됐다. 옛 KT렌탈 시절, ‘A-’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A+’까지 신용 등급을 끌어올렸다. 2011년 옛 금호렌터카 합병에 따라 사업 기반이 강화되고 렌털 시장 내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달게 됐다.
2012년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수익 창출 능력이 좋아지면서 ‘AA-’로 신용 등급이 올라섰다. 신용 평가사들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높게 평가했다.
큰 부침 없이 유지되던 신용 등급은 2014년 변곡점을 맞게 된다. 2014년 3월 KT이엔에스의 지급 보증에 의한 우발 채무가 현실화되면서 재무 부담이 갑자기 커져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회생 절차 개시까지 신청할 처지에 놓였다.
당시 ‘AA-’ 신용 등급에는 KT의 한국 최상위 신용도와 재무적 지원 가능성이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KT이엔에스가 모회사인 KT의 재무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기업 회생 절차 개시를 신청하면서 신용 평가사들은 KT의 지원 의지에 불확실성을 가졌다. 이 때문에 신용 평가사들은 앞다퉈 KT렌탈의 신용 등급을 하향 검토 대상에 올렸다.
결국 KT의 지원 의지는 약해졌고 그해 6월 KT렌탈의 신용 등급은 다시 ‘AA-’에서 ‘A+’로 떨어졌다. 투자 규모 확대로 증가한 차입금과 불안정한 부채 비율 등이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다시 신용도가 상향 조정된 것은 2015년 최대 주주가 변경되면서다. 2015년 6월 최대 주주 변경으로 롯데렌탈이 롯데그룹에 편입되면서 신용 등급에 롯데그룹의 유사시 지원 가능성이 새롭게 반영됐다.
옛 금호렌터카의 자동차 렌털 사업 흡수·합병 이후 자동차 렌털 사업 부문에서 한국 1위 사업자로 입지를 굳힌 데다 적극적인 투자 확대 전략으로 시장점유율이 빠르게 상승한 점도 ‘AA-’로 다시 올라서는 배경이 됐다. 롯데렌탈이란 새로운 사명도 이때 달게 됐다.
4년간 별 탈 없이 유지된 ‘AA-’ 신용 등급은 2019년 10월 다시 위기를 맞게 된다. 외형 확대를 위한 공격적인 영업으로 수익성이 계속 떨어진 때문이다. 경쟁 업체들이 빠르게 시장에 진입하면서 홈쇼핑 등 영업 채널에 대한 비용 부담이 커졌고 중고차 매각률도 하락했다.
신규 사업 부문에서 나오는 수익은 광고비 등을 충당하기에도 벅찼다. 2019년 6월 말 당시 롯데렌탈의 부채 비율은 683.9%에 달했다. 경쟁 업체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었고 차입 규모 증가 속도도 가팔랐다.
신용 평가사들은 결국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부여하고 다시 ‘A’급으로 강등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그 이후에도 롯데렌탈의 재무 안정성은 빠르게 개선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추가적으로 더 악화하지도 않았다. 롯데렌탈은 어쩔 수 없이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 ‘꼬리표’를 2년 가까이 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올해 8월 드디어 이런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의 꼬리표를 떼어내게 됐다.
비우호적 영업 환경과 추격에 속도 내는 경쟁사
롯데렌탈의 신용도 회복에는 IPO가 한몫했다. 올해 8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면서 롯데렌탈은 신주 발행을 통해 약 4219억원의 자본을 확충했다. 증자로 유입된 금액을 자본 총계에 단순 가산하면 롯데렌탈의 부채 비율은 올해 6월 말 기준 630.9%에서 406.0%로, 단순 자기 자본 비율은 13.7%에서 19.8%로 크게 개선된다.
김예일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당초 롯데렌탈의 ‘안정적’ 신용 등급 전망 복귀 요인으로 총자산 이익률(ROA) 1% 이상과 14% 이상 자기 자본 비율을 제시했다”며 “비용 구조 개선과 중고차 매각률 개선으로 수익성을 회복하고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통한 유상 증자로 재무 안정성이 좋아졌다”고 분석했다.
단, 전망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우선 시장의 경쟁 강도가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렌탈은 올해 6월 기준 21.6%의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한국 1위 자동차 렌털 사업자다.
이 자리는 언제 바뀔지 모른다. SK렌터카와 현대캐피탈 등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SK렌터카는 2019년 말 SK네트웍스로부터 렌터카 사업 부문을 현물 출자를 받아 렌터카 사업 부문을 통합했다. 지난해 유상 증자를 실시하는 등 그룹의 재무적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 덕분에 시장 지배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SK렌터카와 SK네트웍스와 점유율을 합하면 20%에 근접해 롯데렌탈의 점유율과 비슷하다. 시장 참여자들은 SK렌터카가 강화된 시장 경쟁력을 앞세워 롯데렌탈과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SK렌터카의 과감한 경영 전략은 전체 자동차 렌털 시장뿐만 아니라 롯데렌탈의 경영 방향 자체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실제 롯데렌탈은 렌털 차량 순투자 확대로 차입금이 추세적으로 증가해 왔다. 올해 6월 기준 롯데렌탈의 순차입금은 3조6175억원에 달한다. IPO로 재무 부담이 줄기는 했지만 높은 시장 경쟁 강도를 볼 때 연간 1조원을 웃도는 렌털 자산 등의 투자가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
송미정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자산 확대로 영업 수익이 증가하고 있지만 경쟁 심화로 차량 단가 상승이 렌털료 인상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며 “롯데오토리스 등 자회사 실적이 렌터카 부문의 수익성을 보완하는 요소로 작용해 왔지만 과거에 비해선 수익성은 저하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추가적인 신용도 개선을 위해선 비우호적인 영업 환경 속에서 수익성 개선 여부를 좀 더 관찰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