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수제 맥주를 뽑아주세요.”
롯데칠성음료는 ‘수제맥주 캔이 되다’라는 이름의 대국민 수제 맥주 발굴 오디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디자인과 맛의 수제 맥주를 위탁 생산(OEM) 형태로 출시하기 위해서다. 현재 총 30개 브루어리의 70여 개 수제 맥주 브랜드가 오디션에 응모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운영 중인 브루어리가 대략 150여 곳인 것을 감안하면 5개 업체 중 1곳이 오디션에 참가한 셈이다. 투표는 9월 26일까지 진행된다. 롯데칠성음료는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업체들을 최종 선정한 뒤 자사의 맥주 생산 공장을 활용해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예정이다.
주류 시장의 ‘변방’ 취급을 받아 왔던 수제 맥주의 위상이 최근 급격하게 높아지고 있다. 참신한 디자인과 맛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사로잡으며 서서히 맥주 시장의 ‘대세’로 자리를 이동하는 모습이다.‘다양한 맛’ 추구하는 니즈 확산수제 맥주의 시장 규모 자체는 아직 크지 않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수제 맥주 시장 규모는 약 1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전체 맥주 시장이 약 5조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차지하는 비율 자체는 미미하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시장의 빠른 성장 속도에 주목하고 있다.
2013년까지만 하더라도 수제 맥주의 시장 규모는 100억원이 채 되지 않았지만 불과 7년 사이 시장이 10배 이상 커졌다. 향후에도 이런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제맥주협회는 올해 시장 규모가 지난해 대비 2배 커진 2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홈술’ 열풍을 타고 맥주 시장에서도 다양한 맛을 중요시하는 소비자의 니즈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수제 맥주의 ‘대중화 바람’이 불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주류·외식업계에서는 최근 수제 맥주를 신성장 동력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시장 공략에 나서기 시작해 주목된다.
롯데칠성음료가 브루어리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진행한 것도 이들의 ‘생산 기지’ 역할을 자처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의 수혜를 누리겠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올해 1월부터 주세법 개정에 따라 주류를 OEM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맥주를 대량 생산해 많이 팔아야 수익이 남지만 중소 자본이 부족하고 네임밸류가 약한 브루어리로서는 시설 투자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주세법이 개정되면서 롯데칠성음료와 같은 대기업에 생산을 맡겨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기업으로서도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수익을 낼 수 있어 이를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롯데칠성음료는 주세법이 개정되자마자 제주맥주·곰표맥주를 생산하는 세븐브로이 등 총 4개의 수제 맥주 브루어리들과 OEM 계약을 했다.
이를 통해 올해 상반기에만 약 7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충주 맥주 공장 일부를 수제 맥주 위탁 생산만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행 중인 오디션이 종료되는 올해 하반기에는 더 많은 브루어리들이 이 공장을 활용해 수제 맥주를 생산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칠성음료는 소비자 투표 결과 10위권 안에 든 수제 맥주 브랜드에게는 충주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브루어리들이 어려움을 겪는 유통 판로를 뚫는 것까지 도움을 줄 것”이라며 “수제 맥주 시장의 저변을 더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를 통해 자체적인 매출 역시 더욱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도 일고 있다.
업계 1위인 오비맥주 역시 수제 맥주 시장을 겨냥해 활발한 제품 출시를 이어 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단 시장 공략 방법에서는 롯데칠성음료와 차이가 있다.
오비맥주는 다른 브루어리의 레시피를 활용하거나 OEM을 하지 않고 직접 수제 맥주를 생산한다.
오비맥주도 시장 공략 잰걸음6월 출범한 수제 맥주 협업 전문 브랜드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BC)’가 수제 맥주 사업의 주축이다. 오비맥주의 양조기술연구소와 이천 공장 수제 맥주 전문 설비 등 전문성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다양한 수제 맥주 전문가 및 기업들과 합작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취향을 저격할 만한 제품들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첫 제품은 GS25 및 북유럽 스타일 아웃도어 브랜드 노르디스크와 협업해 만든 ‘노르디스크맥주’였다. 이후 CU·BYC와 손잡고 만든 ‘백양BYC 비엔나라거’, 이마트24와 함께한 ‘최신맥주 골든에일’, 세븐일레븐·배달의민족과 협업한 ‘캬 소리 나는 맥주’ 등 총 4가지 종류의 수제 맥주를 선보였다.
특히 8월 출시한 ‘캬 소리나는 맥주’는 보름 만에 초도 물량 25만 개가 완판되는 등 판매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향후에도 이종 브랜드 및 수제 맥주 전문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수제 맥주 카테고리를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주요 맥주 기업 가운데 아직까지 하이트진로만 수제 맥주와 관련한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경쟁사들의 행보를 감안할 때 하이트진로 또한 머지않아 수제 맥주와 관련한 계획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비주류업계 역시 수제 맥주의 성장성을 높게 평가해 시장에 뛰어들며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대표적으로 교촌치킨을 운영하는 교촌에프앤비를 꼽을 수 있다. 교촌은 올해 5월 수제 맥주 브랜드인 ‘문베어브루잉’을 인수했다. 이후 ‘금강산 골든에일’과 ‘백두산 IPA’ 등의 맥주를 출시하며 맥주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8월에는 강원도 고성에 대규모 수제 맥주 공장까지 열면서 본격적으로 경쟁에 뛰어들었다. 교촌은 자체적으로 보유한 1300여 개 가맹점을 활용해 ‘치맥(치킨+맥주)’ 소비자 공략에 나설 계획이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 다양한 유통 채널로 수제 맥주 판매처를 늘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제너시스BBQ 역시 수제 맥주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경기도 이천에 자체 양조장을 구축하고 있다. 앞서 제너시스BBQ는 마이크로브루어리코리아와 손잡고 한국 치킨 프랜차이즈 최초로 수제 맥주 자체 브랜드인 ‘비비큐 비어’를 개발한 바 있다.
이천 공장이 완공되면 이를 활용해 자체 개발한 수제 맥주를 직접 생산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수제 맥주 출시에 열을 올리는 만큼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시장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만큼 우려도 존재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의 시장 진출에 따라 대량으로 생산되는 수제 맥주가 생산되면 소규모 브루어리에서 만든 특유의 매력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