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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인상’ 딜레마에 빠진 식음료 기업 / 신세계푸드, 노브랜드버거, 롯데GRS, 스테디셀러 제품, 데이터 경영, 기업 양극화, 충성고객, 판매 시점 정보 데이터, POS

원재료 상승 압박에 무작정 제품 값 올리면 ‘역풍’ 불 수도…‘충성 고객’ 확보가 관건

“각종 비용의 증가로 어쩔 수 없이 판매 가격을 인상하게 됐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버거킹 관계자는 새해 벽두부터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든 배경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버거킹은 1월 7일부터 점포에서 판매 중인 햄버거 25종을 포함해 총 33종의 상품 가격을 평균 2.9% 올린 상태다.


이에 따라 대표 메뉴인 ‘와퍼’ 단품은 300원 오른 6400원을 내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원자재 가격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등 각종 제반 비용 증가에 따른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롯데GRS가 운영하는 롯데리아와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버거가 같은 이유로 각각 4.1%, 2.8% 제품 값을 올린 바 있다.


주요 식음료 기업들이 가격 인상 딜레마에 빠졌다. 햄버거업계가 대표적이다. 최근 주요 업체들이 잇따라 가격을 올렸지만 문제는 역풍이다.


벌써부터 소비자들 사이에서 가격을 인상한 업체들을 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마당에 기업들이 제품 가격까지 높인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물론 모든 기업들이 같은 전략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소비자들의 반응을 감안해 경쟁사와 다른 길을 택한 기업들도 있다. 롯데리아를 제치고 업계 1위(점포 수 기준)에 오른 맘스터치를 꼽을 수 있다.맘스터치, 2년 연속 가격 동결맘스터치도 사정이 어렵긴 마찬가지다. 생산비 급증으로 실적 개선세가 예전만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맹점 수익이 악화되면서 일부 점주들 사이에서는 ‘우리도 제품 가격을 올리자’는 의견이 나오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격을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맘스터치 관계자는 “재료비나 인건비 외에도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수수료 부담 등 인상 요인이 적지 않지만 제품 값을 올릴 계획은 없다”며 “만약 점주들의 반발이 더욱 심해지면 내부에 가동 중인 ‘자율분쟁조정기구’를 통해 이를 자율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맘스터치는 지난해 초에도 주요 햄버거 업체 중 유일하게 가격을 동결했는데 2년 연속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착한 기업’ 이미지를 굳히게 됐다는 평가다.


주요 업체들 중 맥도날드도 아직 가격을 인상하지 않았다. 공식적인 방침은 내놓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맥도날드가 버거킹과 롯데리아 등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살핀 뒤 인상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매년 관행처럼 햄버거 값이 인상돼 왔기 때문에 결국 맥도날드도 이 대열에 합류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는데 현재로선 어떤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며 당분간 제품 값을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치킨업계 또한 이와 비슷한 모습이 연출되는 상황이다. 업계 1위와 2위인 교촌과 bhc 등이 일제히 치킨 값을 올렸다. 하지만 BBQ만은 예외다. BBQ 관계자는 “가격 상승 요인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본사가 보든 손해를 감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제품 값을 둘러싼 식음료 기업들의 이른바 ‘눈치 싸움’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방침과 글로벌 경기 불안 등이 배경이다.


대외적으로 보면 국제 유가는 계속해 오름세를 보이고 있고 기후 변화 등으로 국제 곡물 가격 또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가파른 최저임금·임대료 상승 등이 도사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내외 정세를 감안하면 앞으로도 계속해 원재료 값 상승이 이어질 것”이라며 “추가적인 가격 인상이 필요하지만 자칫하면 소비자들에게 나쁜 기업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가격을 올렸다가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가격 인상 여부와 관련한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혁신해야 생존”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인상할 때 얼마나 충성 고객을 확보했는지 여부와 시장 상황을 점검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대체재가 없는 필수재는 가격 상승이 분명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경쟁사로 고객들이 이탈하며 더욱 큰 어려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심을 예로 들었다. 지난해 8월께 농심은 ‘더 이상은 버티기 어렵다’며 2016년 이후 5년 만에 신라면 등 주요 라면 제품 값을 6.8% 인상했다. 하지만 애초 우려와 달리 농심의 실적 전망은 더 밝아졌다. 실제로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농심은 제품 가격 인상으로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크게 개선된 것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농심이 이런 효과를 거둔 첫째 요인으로 충성 고객을 꼽았다.


그는 “농심의 신라면·짜파게티·너구리 등은 독보적인 맛으로 꾸준하게 판매되는 스테디셀러 제품”이라며 “이는 그만큼 농심이 많은 충성 고객을 가졌다는 의미다. 그러면 가격 인상은 즉각적인 매출 증대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둘째는 시장 환경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가정 간편식(HMR)이 식품 시장의 대세가 됐다. 자연히 라면을 찾는 소비자들도 늘어나 농심에 유리한 경영 환경이 조성되며 가격 상승으로 불거질 수 있는 역효과 또한 상쇄됐다는 분석이다.


반면 한 시장을 두고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면 이는 특정 제품에 대한 고객 충성도가 높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대종 교수는 “이런 경우 경쟁사들이 가격을 올릴 때 오히려 동결하는 것이 제품 경쟁력 강화는 물론 착한 기업 이미지까지 심어줄 수 있어 신규 고객을 확보하는 데 좋은 전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원재료 상승 압박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만큼 대대적인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상승과 국제 정세 불안 등으로 인해 생산비 압박이 매년 지속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며 “가격 인상은 수많은 리스크를 수반한다. 결국 답은 업무 효율성 제고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품 생산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리온은 이 같은 생산 과정 혁신의 모범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오리온은 무려 8년째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제과 제품의 원료인 국제 곡물 가격이 급등했음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 유일하게 가격을 동결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데이터 경영’에 있다. 오리온은 2016년부터 편의점과 대형마트 등에서 발생하는 판매 시점 정보 데이터(POS)를 구매해 자체적으로 분석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과 트렌드를 파악해 제품 생산량을 조정해 왔다.


잘 팔리지 않는 제품은 생산량을 줄여 재고를 최소화하는 등 효율적인 경영으로 수익을 극대화했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오리온의 반품률은 0.5%(지난해 상반기 기준)로 거의 반품이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또 영업이익률은 15% 이상을 기록하며 동종 업계 평균(약 3~4%)을 크게 웃돌고 있다.


김태기 교수는 “혁신하는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원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도태되는 ‘기업 양극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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