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부산교육청, 항소심 포기…패소 가능성·혈세 낭비 지적 의식한 듯
교육계를 뒤흔들었던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 소송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서울교육청이 서울 지역 자사고 7곳에 진행 중인 ‘자사고 지정 취소’ 소송의 항소를 취소하면서다.
부산교육청 역시 해운대고 항소심에서 패소하며 상소를 포기했다. 이에 따라 10개의 자사고 중 8곳의 자사고 소송이 교육청의 패소로 끝났다.
자사고는 이명박 정부의 ‘고교 다양화’ 정책에 따라 2009년 도입됐다. 국가의 보조를 받지 않는 대신 학교가 교육 과정을 자율로 운영하고 신입생 선발은 일반고에 앞서 시·도별로 중학교 내신 상위 30~50% 지원자 가운데 추첨으로 뽑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자사고는 설립 이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 왔다. 일부는 자사고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고교 서열화를 조장한다며 자사고 폐지를 주장했다. 반면 존속론자들은 차별화된 교육을 제공함으로써 교육 발전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고 맞섰다.
쟁점은 평가 기준…자사고 “재량권 침해” vs 교육청 “문제없다”
사건은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6월 전국 시·도교육청에서 자사고 운영 성과(재지정) 평가를 거친 결과 자사고 24곳 가운데 11곳에 ‘지정 취소’ 처분이 내려졌다. 해당 자사고들이 기준 점수인 100점 만점에 70점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자사고 자격을 박탈했다.
서울교육청은 배재·세화·숭문·신일·중앙·경희고·이대부고·한양대부고 등 8곳의 자사고 지위를 박탈하기로 결정했다. 이 밖에 부산 해운대고와 안산 동산고, 전북 상산고도 자사고 취소 대상에 해당됐다.
교육부는 상산고를 제외한 모든 학교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승인했다. 이들 학교는 처분에 반발해 법원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과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숭문고는 올해부터 자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하며 소송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자사고 평가 기준이었다. 서울교육청은 2019년 자사고 재지정 결정에 앞서 평가 기준을 큰 폭으로 바꿨다. 이를 2018년 11월 말 자사고에 알리고 새로 설정된 기준을 과거 평가에도 일괄 적용했다. 평가 기준을 변경 시점부터가 아닌 2015년 3월부터 운영 성과에 소급 적용한 것이다.
자사고 측은 “교육청이 재지정 평가 직전 갑자기 평가 기준을 크게 바꾸는 등 변경에 절차적 문제가 있고 과거 시점까지 소급해 적용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평가 항목과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해 지정 취소 처분은 무효”라고 덧붙였다.
반면 교육청 측은 신설된 지표엔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고수했다. 또한 이전의 평가안을 통해 자사고 측이 2019년 평가 계획을 예측할 수 있다고도 반박했다.
법원에서 자사고 전승(全勝)
부산 해운대고를 시작으로 10개 자사고 취소 소송전이 이어졌지만 결과는 교육 당국의 완패였다. 법원은 우선 평가 기준의 적용 시점에 문제가 있다고 봤다.
재판부는 “2019년 평가 계획에서 교육청은 평가 지표와 평가 기준에 중대한 변경을 가했다”며 “이는 교육청이 사후적으로 중대하게 변경된 처분 기준에 따라 소급해 평가를 진행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또한 “이 같은 교육청의 평가는 재평가를 거친 재지정 제도의 본질이나 적법 절차 원칙에서 도출되는 공정한 심사 요청에 반하므로 재량권을 남용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전 평가안을 통해 평가 계획을 예측할 수 있다는 교육청 측의 주장 역시 배척됐다. 사건을 심리한 다른 재판부 역시 “2019년 평가에서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2014년 평가 기준을 참조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며 “2019년 평가 계획은 평가 지표와 기준에서 자사고 지정 취소 여부를 좌우할 정도로 중대한 변경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한 “교육청은 변경된 내용을 소급해 이 사건 평가 대상 기간에 적용한 후 이 사건 학교들에 대해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는데 이는 합리적 기준에 의한 공정한 심사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사고의 지정 취소가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갖는 의미와 중요성을 고려할 때 주요 평가 지표를 변경하거나 신설하는 경우 그 내용을 미리 알려야 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졸속 행정으로 자사고 지위를 축소시킬 만큼 중대한 공익적 가치도 없다고 평가했다. 세화고와 배재고의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 소송의 심리를 맡은 재판부는 “자사고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지정된 자사고의 수를 종전보다 현저하게 감축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가 인정되거나 관계 법령이 제·개정됐다는 등의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처분 기준 사전공표제도의 입법 취지에 반한다”고 명시했다.
일반고 전환 시행령은 여전…헌재·대선 손에 달린 존폐
각 시·도 교육청은 이에 불복해 2심을 진행했지만 가장 첫 소송이었던 부산 해운대고의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결론이 나자 부산교육청은 상소를 포기했다. 서울교육청 역시 현재 진행 중인 항소심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경기교육청은 안산 동산고에 대한 항소심을 계속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부산교육청의 소송 중단은 전략적 판단이다. 부산교육청은 해운대고에 대한 상고를 포기하며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으로 2025년 전국 모든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더는 소송의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1심에 이어 2심도 패소하자 남은 재판도 패소할 소지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익이 없는 소송에 혈세를 낭비한다는 지적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교육청 역시 2022년 1월 27일 “2025년 예정된 자사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에 따라 그 의미가 축소된 소송을 끝내고 2025년 고교 학점제 전면 시행에 따른 새로운 고교 체제 개편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더 충실히 부응하겠다”며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
두 교육청의 말처럼 자사고 취소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2025년 전국 자사고는 일반고로 일괄 전환될 예정이다.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설립과 운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있다. 교육부는 2019년 이 시행령을 삭제하기로 했다.
시행령으로 폐지가 예고된 만큼 정권이 바뀌면 다시 시행령으로 이들 학교를 되살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시행령은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바꿀 수 있다. 2019년 자사고 폐지 시행령을 발표할 당시 국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할 수 있었던 이유다. 올해 대선 이후 차기 정부가 현 정부와 다른 교육 철학을 내세워 시행령 수정에 나선다면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또 한 가지 변수는 헌법소원이다. 2020년 5월 자사고·외고·국제고 등 24개교의 학교는 해당 시행령에 대해 지난해 5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자사고 측 변호를 맡은 이석연 전 법제처장은 “법에 규정된 평등권은 각인(各人)의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기회를 주는 상대적 평등”이라며 “현 정부가 추진하려는 개정안은 각인의 능력을 감안하지 않고 획일화하려는 절대적 평등이기 때문에 헌법적 가치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만약 헌재에서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자사고 지위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