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오쇼핑’이 5월 10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부터 CJ오쇼핑은 ‘CJ 온스타일’이라는 이름을 달고 새롭게 출발한다. 단순히 이름만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주력 사업도 완전히 바뀐다. CJ온스타일은 라이브 커머스 강화를 통해 TV가 아닌 모바일로 사업의 중심축을 이동시킬 예정이다.
라이브 커머스는 다양한 온라인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허민호 CJ온스타일 대표는 “TV를 넘어 라이브 커머스의 최강자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기반으로 2023년까지 모바일 부문 매출 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치도 제시했다. 홈쇼핑업계 1위의 이른바 ‘탈TV’ 선언이다.
그동안 TV라는 플랫폼이 홈쇼핑을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가장 효과적인 플랫폼이었다면 미래에는 모바일에 기반한 라이브 커머스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TV 홈쇼핑의 미래를 이렇게 내다봤다.
홈쇼핑업계가 라이브 커머스 역량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CJ온스타일·GS홈쇼핑·현대홈쇼핑·롯데홈쇼핑 등 이른바 업계 ‘빅4’ 모두 라이브 커머스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기류가 읽힌다.
라이브 커머스와 관련한 새 브랜드를 론칭하고 여기에 맞춰 내부 조직을 재정비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은 기업별로 차이가 있지만 이 시장을 선점해 TV 홈쇼핑의 뒤를 이을 새로운 ‘캐시 카우’로 만들겠다는 목표만큼은 모두 일치한다.
현재 한국의 라이브 커머스 시장 규모는 지난해 약 3조원대를 형성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가파르게 커져 2030년에는 약 30조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방송에 일가견이 있는 홈쇼핑업계가 군침을 흘리는 것은 당연하다.
라이브 커머스로 사업 중심 이동
라이브 커머스는 스마트폰 모바일을 통해 실시간 상품 판매 방송을 하는 방식이다. 언뜻 보면 생방송으로 상품을 판매하는 TV 홈쇼핑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 속살을 들여다보면 뚜렷한 차이가 있다.
우선 TV 홈쇼핑의 주요 고객은 중장년층이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고 TV 시청에 익숙한 세대다. 반면 라이브 커머스는 모바일 활용도가 높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타깃으로 설정하고 운영된다.
자연히 판매하는 상품의 종류나 방식도 구분될 수밖에 없다. TV 홈쇼핑은 중장년층의 성향에 맞추다 보니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 또는 생필품 등을 위주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다.
라이브 커머스는 MZ세대가 열광할 만한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애플의 ‘에어팟 프로’ 등 TV 홈쇼핑에서 보기 어려웠던 제품들을 많이 소개한다. 또 쇼 호스트가 일방적으로 상품을 소개해 주는 TV 홈쇼핑과 달리 실시간으로 채팅창을 활용해 제품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것도 라이브 커머스의 특징이다.
즉, 라이브 커머스를 강화하기 위해선 상품 소싱부터 방송 진행 방식까지 기존에 고수해 왔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CJ그룹이 새롭게 CJ온스타일을 론칭한 이유다. CJ온스타일 관계자는 “주력 사업을 TV 홈쇼핑에서 모바일 라이브 방송으로 전환하는 만큼 운영 방식이 이전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새 출발의 의미를 담아 브랜드명 변경을 결정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CJ온스타일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 라이브 방송 화면을 전면 배치하는 초강수를 뒀다. 방문자들의 눈에 확 띄는 곳에 ‘라이브 쇼’ 메뉴를 만들었다. 클릭하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라이브 방송으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고 이미 종료된 방송들도 찾아 볼 수 있다.
또 유명 쇼 호스트나 인플루언서와 같은 셀러가 시청자와 쌍방향 소통하며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는 ‘셀러 라이브’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차별화를 꾀했다.
1인 방송 콘셉트로 진행하는 셀러 라이브는 셀러가 시청자들과 화상 채팅을 하듯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애용하는 상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이다. 당초 소개를 계획했던 상품 외에도 실시간으로 시청자의 질문에 응대하다가 즉흥적으로 상품을 추전하기도 하는 새로운 형태의 라이브 커머스 방송이다.
CJ온스타일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인플루언서와 긴밀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라이브 방송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패션·뷰티·리빙 등에 특화된 다양한 라이브 커머스를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앞으로 라이브 커머스 방송 시간도 대폭 늘린다. 올해 안에 ‘다채널 생방송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동시에 여러 개의 라이브 커머스 콘텐츠를 진행하겠다는 얘기다. CJ온스타일은 현재 온라인에서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플루언서 영입 등 관련 인력 확충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맞서는 롯데홈쇼핑과 현대홈쇼핑의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기존의 라이브 커머스 채널을 더욱 업그레이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경쟁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롯데홈쇼핑은 2019년 모바일TV ‘몰리브’를 출범하며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현재까지 누적 방문자 수 35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 라이브 커머스 시장이 급성장하는 추세라고 판단해 채널 이름을 ‘엘라이브(Llive)’로 변경하고 고객 편의 중심의 화면 구성, 이색 콘텐츠 기획, 모바일 생방송 강화에 나섰다.
홈쇼핑업계 정체된 실적 개선 '청사진'
조직 내부에도 큰 변화를 줬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모바일 생방송 전문 PD, 상품기획자(MD)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 콘텐츠부문을 신설했다. 모바일 라이브 콘텐츠와 서비스 전략을 전담하는 태스크포스팀(TFT)도 만들었다.
롯데홈쇼핑 엘라이브.롯데홈쇼핑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최근에는 50·60도 모바일에 많이 익숙해지며 라이브 커머스 시장에 유입되는 추세”라며 “MZ세대 외에도 다양한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는 신선한 콘텐츠 생산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8년 현대H몰 모바일 앱 내에 ‘쇼핑라이브’ 코너를 론칭하며 라이브 커머스 사업에 뛰어든 현대홈쇼핑도 올해 라이브 커머스 매출을 1000억원까지 키우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현대홈쇼핑에 따르면 쇼핑라이브를 통한 라이브 커머스 사업 매출은 2019년 50억원에서 지난해 285억원으로 약 5배 넘게 성장했다. 라이브 커머스 방송 횟수와 방송 시간대를 대폭 늘린 것이 주효했다. 2019년 매주 12회 진행하던 방송을 지난해 주 26회로 늘렸다. 방송 시간도 3시간에서 6시간으로 두 배나 늘렸다.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방법으로 외형 확대에 나선다.
상반기 내에 라이브 커머스 운영 인력을 10여 명 추가할 계획이며 전문 쇼 호스트도 두 배 정도 늘릴 예정이다. 인력 확충이 마무리되면 쇼핑라이브 방송 횟수는 주 50회, 고정 프로그램은 현재 7개에서 15개로 늘어난다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라이브 커머스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GS홈쇼핑도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쟁사들의 행보에 신경이 쓰였는지 갑자기 5월 들어 모바일 TV 브랜드 ‘샤피’를 론칭하고 라이브 커머스에 뛰어들었다.
CJ온스타일(2017년)·롯데홈쇼핑(2019년)·현대홈쇼핑(2018년) 등이 모두 정규 방송 외에 별도로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했지만 GS홈쇼핑만은 예외였다.
GS홈쇼핑 관계자는 “브랜드의 새로운 홍보 수단으로서의 라이브 커머스가 부각되면서 내린 결정”이라며 “샤피라이브가 TV 홈쇼핑과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라이브커머스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높게 예상되면서 네이버·카카오 등 정보기술(IT) 공룡들부터 작은 규모의 기업들까지 뛰어드는 실정이다. 홈쇼핑업계에서는 이런 과열 분위기가 오히려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수많은 기업들이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진행자들이 질이 떨어지는 상품들을 판매해 논란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점차 신뢰도가 중요해지면서 믿을 수 있는 홈쇼핑 기업들의 라이브 커머스 방송으로 소비자들이 대거 이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홈쇼핑 기업들의 정체된 실적 흐름에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홈쇼핑 실적이 좋았던 것은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었다”며 “오랜 기간 지지부진한 흐름을 겪어 왔던 홈쇼핑업계가 라이브 커머스를 통해 재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