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기만 해도 2주 안에 7kg이 빠집니다.”(식품) “바르기만 하면 탈모 전격 해결!”(일반의약품)
‘광고의 시대’를 살아가며 소비자들은 매 순간 유혹적인 문구와 마주친다. ‘저걸 사기만 하면 정말 광고대로 될까’ 한 번쯤은 생각해 본다. 하지만 효과를 믿을 수도, 증명해 보일 수도 없는 광고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사용이 일상화되면서 이런 일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더욱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제품에서 사실보다 효과를 부풀리는 ‘과장 광고’,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기만 광고’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먹거리나 약품, 미용 관련 생활 가전 등이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미세먼지의 일상화로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러한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한국 1위 전자 기업인 삼성전자도 사실에서 다소 벗어난 광고로 당국의 처벌을 받았다. 삼성전자가 공기청정기 기만 광고를 했다는 사유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4억8800만원을 부과받고 이를 취소해 달라고 소송했지만 대법원은 사실상 공정위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했다.
삼성 공기청정기 ‘바이러스 99% 제거’ vs 공정위 ‘기만 광고’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 명령 등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삼성전자가 실질적으로는 패소했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2018년 삼성전자가 과거 5년 동안 공기청정기 제품을 광고하며 근거가 부족한 과장 광고를 했다고 봤다. 2011년 1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삼성전자는 플라스마 이온 발생 장치인 바이러스닥터를 부품으로 탑재한 공기 청정 제품을 광고하면서 ‘독감 HINI 바이러스 제거율 99.68%, 조류독감 바이러스 제거율 99.99%, 코로나 바이러스 제거율 99.6%,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A형 독감 99.7% 제거’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점이 사실보다 과장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공정위는 이 광고가 소비자에게 오해를 줬다며 ‘기만적인 표시·광고’에 해당한다고 간주했다. 광고에 관한 법률인 표시광고법에 따르면 사실을 숨기거나 축소, 누락시킨 광고는 ‘기만 광고’로 분류된다. 기만 광고는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광고 수용자가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게 유도하거나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광고다. 사실과 다르게 표시하거나 효과를 지나치게 부풀린 ‘거짓 광고’와는 사뭇 다른 개념이다. 두 광고 모두 당국의 처벌을 피하기 힘들다.
공정위는 무엇보다 이 광고로 소비자들이 공기청정기 기능을 착각했다고 봤다. 공정위 측은 “실험 결과가 제한된 환경과 조건에서 완제품의 일부 부품에 대해 행해진 것을 명시하지 않았다“며 “소비자들을 오인하게 한 기만 광고에 해당한다”고 했다.
삼성전자의 광고 중에선 공기 청정 제품이 작동하며 부유 물질이 제거되는 실내 공간 사진을 배경으로 ‘바이러스닥터, 실내 공간에 부유하고 있는 해로운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물질을 99% 제거’ 등 항균·항바이러스 효과를 표시하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광고 문구에 적힌 효과가 나타난 실험 공간과 소비자가 실제로 제품을 사용하는 실내는 사용 환경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보고 삼성전자에 4억8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전자는 취소 소송을 내며 맞불을 놓았다.
법원에서도 공정위 승리…“실내에선 효과 다를 수 있다고 명시했어야”
2심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서울고등법원은 공정위의 판단을 대부분 인정했다. 과징금을 약간 낮추긴 했지만 원래 부과한 금액과 큰 차이가 없는 ‘4억7200만원’을 과징금으로 처분하라고 했다.
서울고법은 “삼성이 광고의 근거로 제시한 실험 결과는 밀폐된 1㎥ 정도의 소형 시험 챔버 공간에서 개별 부품 이온 발생 장치의 성능을 측정한 것으로, 실제 사용 환경과 큰 차이가 있는 점, 광고에는 실내 공간 사진을 배경으로 실험 조건의 구체적 기재 없이 실험 결과를 표시해 소비자가 오인할 가능성이 높아 해당 광고는 기만적인 광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또 “‘제거율은 실험실 조건이며 실사용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형식적인 제한 사항을 표시한 것만으로는 소비자의 오인 가능성을 제거하기 부족하다”며 공정위의 시정 명령 처분이 적법하다고 봤다.
과징금을 조금이나마 낮춘 이유는 무엇일까. 광고 가운데 일부는 ‘소비자 기만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봐서다. 이에 따라 해당 부분과 관련된 과징금 1600만원에 대해서는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자연 가습 청정기, 공기청정기 제품 부분은 기만적인 광고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이 제품 매출액을 제외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공정위와 삼성전자 측은 모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서울고법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판결을 확정했다. 과징금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책정했다고 봤다. 표시광고법 제9조에 따르면 공정위는 부당한 광고를 한 사업자에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매출액’의 2%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위반 행위의 정도와 기간 및 부당 광고로 벌어들인 이익 등을 고려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매출액은 ‘위반 사업자가 위반 기간 동안 판매하거나 매입한 관련 상품 등의 매출액이나 매입액 또는 이에 준하는 금액’으로, 삼성전자가 이 사건 제품을 판매한 6년의 기간을 기준으로 산정했으므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냉난방비 40% 절감”…효과 부풀린 창호 업체도 과징금 13억원
“창문만 바꿔도 난방비 뚝 떨어집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창호 광고다. 하지만 실제보다 효과를 부풀렸다는 점이 당국에 발각되며 관련 업체들은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LG하우시스·KCC·현대L&C·이건창호·윈체 등 총 5개 창호 업체에 대해 과징금 총 12억8300만원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이들 업체는 에너지 절감률, 냉난방 비용 절감액 등 에너지 절감 효과를 과장 광고한 것이 적발됐고 이에 따른 시정 명령도 받게 됐다.
공정위는 이에 LG하우시스에 7억1000만원, KCC에 2억2800만원, 현대L&C에 2억500만원, 이건창호에 1억800만원, 윈체에 32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틈새 없는 단열 구조로 냉난방비를 40% 줄여준다(LG하우시스)”, “연간 에너지 절감액 약 170만원(KCC)”, “창호 교체만으로 연간 최대 40만원의 냉난방비 절약(현대L&C)” 등 구체적인 수치를 넣어 제품의 에너지 절감 효과를 마케팅했다.
하지만 광고에서 강조한 효과는 특정 조건(24시간 사람이 상주하는 상황에서 냉난방을 가동한 경우 등)이 갖춰진 경우에 나온 시뮬레이션 결과인데 5개사는 이를 알리지 않고 일반적인 주거 환경에서도 동일·유사한 에너지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한 것이다.
몇몇 회사는 실험 조건과 다른 상황에서는 같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문구를 전혀 쓰지 않았다. 기재하더라도 ‘30평 주거용 건물 기준’이라는 등 효과의 차이를 알기 힘든 표현만 넣었다.
공정위는 “시뮬레이션 상황과 실제 거주 환경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등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야 한다”며 “소비자는 자신이 실제 거주하는 생활 환경에서도 광고와 같이 에너지 및 비용 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