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초 1억 달러의 상금을 건 ‘엑스프라이즈-탄소 제거(XPRIZE Carbon Removal)’ 경연 대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대회의 목적은 연간 1000억 톤에 달하는 대용량의 탄소를 포집한 후 최소 100년간 대기에서 분리할 수 있는 기술을 발굴하는 것이다. 이는 곧 탄소 포집·활용·저장을 뜻하는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의 상용화를 먼저 이뤄 내는 기업이 앞으로 기후 관련 산업의 주축이 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CCUS 기술을 현시점에서 탄소 배출량 ‘0’을 달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선포했다. 이에 2050년까지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넷제로(net-zero) 목표를 선언한 국가들도 배출한 탄소를 다른 물질로 상쇄시키는 CCUS 기술 상용화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탄소 배출량 0의 희망, CCUS
탄소 포집 기술은 새로 등장한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의 역사는 1970년대 미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CCUS는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배출된 탄소를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한 기술이다.
CCUS 이전에는 탄소 포집과 활용(CCU : Carbon Capture&Utilization), 탄소 포집과 저장(CCS : Carbon Capture&Storage) 기술이 있었다. CCUS는 CCU와 CCS를 통합하는 기술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의 대기 방출을 봉쇄할 수 있는 모든 기술을 아울러 일컫는 용어다.
CCS는 발전소나 산업체에서 발생하는 탄소가 대기 중에 배출되기 전에 포집해 저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포집된 탄소는 저장에 적합한 장소로 이동하기 용이한 액체 상태로 변화시킨다. 이후 파이프라인이나 배를 통해 땅이나 바다로 이동시켜 저장하는 것까지가 CCS 기술의 역할이다.
CCS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탄소를 저장할 수 있는 대규모의 지하 공간이 필요하다. 충분한 지하 저장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국가들은 CCS 기술을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탄소를 운송하는 비용, 운송 시 발생하는 불안정성, 이미 배출된 탄소를 저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것이 CCU다.
CCU는 탄소 포집·저장에서 더 나아가 화학 원료, 에너지원, 건축 자재 등으로 전환해 활용하는 기술이다. 크게 화학적·생물학적 전환을 활용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비전환 직접 활용 기술, 탄소를 다른 제품으로 바꿔 사용하는 전환 기술로 나뉜다.
비전환 활용 기술은 대표적으로 탄소를 활용한 석유 회수 증진 기술(EOR : Enhanced Oil Recovery)을 꼽을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유전에 주입해 석유 채취의 생산성을 향상하는 원리다. 전환 활용 분야는 탄소를 활용해 새로운 연료나 화학 물질을 만들거나 건축 자재물을 만드는 기술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CCU 활용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다. CCU가 상용화되려면 탄소를 자원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비용 공급과 기존 석유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품질을 달성해야 한다. 자원화 과정에서 또 다른 탄소를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 CCUS는 이러한 상용화 과정에서 CCS와 CCU 기술을 혼합해 탄소 포집 기술의 활용도를 높이자는 접근에서 출발한다.
IEA는 CCUS를 기후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침체된 경제 회복에 기여할 수 있는 강력한 요소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전기 발전, 바이오 에너지, 수소 에너지와 함께 에너지 전환의 필수 4대 요소 중 하나로 꼽으며 기후 문제의 주요 대책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선진 탄소 포집 기술 바짝 추격하는 한국
탄소 포집 기술 연구에서 한국은 출발이 다소 늦었다. 미국이 보유한 상업용 CCUS 시설은 이미 10개에 달한다. 가장 오래된 시설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미국의 CCUS 시설이 포집하고 있는 탄소는 전 세계 포집 용량의 3분의 2(연간 25메가톤)를 차지한다.
노르웨이도 1980년대부터 꾸준히 탄소 포집 기술을 연구해 왔다. 포집된 탄소는 노르웨이에 있는 슬레이프니르(Sleipner)와 스노빗(Snøhvit) 지역에 저장돼 있다. 노르웨이는 CCUS를 국가 전략 기술로 지정한 후 탄소 전문 연구 기관인 몽샤드기술센터를 2012년 설립했다. 이후 꾸준히 대규모 탄소 포집 테스트 시설, 습식 흡수제 연구 등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에야 탄소 포집 기술 상용화 준비에 나선 한국은 선도국 대비 80%의 기술 수준을 달성하며 빠르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다.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은 3월 30일 “현재 한국은 기술이 산업으로 이어지는 ‘기술 사업화를 통한 산업 창출’에서 한계를 보이고 있다. 기술 혁신으로 한계점을 돌파해 2040년까지 9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며 탄소 중립 기술 혁신 추진 전략을 내놓기도 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은 구체적으로 윤곽을 보이기 시작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 7일 정부 기관을 포함한 80여 개 기관이 속한 ‘K-CCUS 추진단’을 출범해 본격적으로 CCUS 기술 상용화에 나섰다. 이번 추진단은 정부가 직접 개입한 첫 CCUS 기술 개발 노력이라는 점과 함께 실제 산업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들이 참여한 민·관 협력 조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SK이노베이션·두산중공업·GS칼텍스·에쓰오일 등이 참여해 기후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신산업 육성에 나선다.
업계 전문가들은 “분야별로 차이는 있지만 한국의 CCUS 기술은 현재 실증 연구 수준에까지 성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포항산업과학연구원에서는 암모니아수를 이용하는 탄소 포집 공정을 포스코에 설치해 광물화 전환 연구를 진행했다. 한국전력연구원은 자체 개발한 습식 흡수제(KOSOL)를 이용해 중부발전 보령 화력과 중국 화능그룹에서 교차 성능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에서는 습식 흡수제와 건식 흡수제를 이용해 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의 상용화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 현대차·기아 등 6개 기업에 기술 이전한 상태다. 또한 탄산 광물화 기술의 연장선으로 탄소로부터 청정 수송 연료 중 하나로 꼽히는 메탄올을 생산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 메탄올 생산성을 나타내는 고성능 촉매를 개발해 내는데 성공했다. 박영철 기후변화연구본부 온실가스연구실장은 “연구원은 산업체 적용 및 차세대 포집 기술 확장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현재 톤당 60달러 수준의 포집 비용을 2050년 톤당 20달러 이하까지 줄이고 중규모 실증(10 MW) 수준인 지금부터 2035년까지 150MW 이상(연 100만 톤) 대규모 포집 및 저장 실증 지원이 가능하도록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산업 특성상 탄소 감축 정책에 받는 영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산업계의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계획 아래 탄소 감축을 진행해야 한다. 권이균 공주대 지질환경학과 교수는 “CCUS 기술은 아직까지 높은 공정비용 문제로 인해 경제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는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혁신을 통한 비용 절감”이라며 “특히 CCS 사업은 지하에 주입된 탄소의 누출이나 지진 등을 방지할 수 있는 CCS 기술의 안전성 강화가 필요하다. 적극적이고 투명한 소통을 통한 주민 동의와 공공 수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