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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법률

주52시간 미만 일했어도 스트레스 심하면 ‘산업재해’ / 탄력근로제, 급성 심근경색, 경고성 벌금형, 노동 관계 질서, 주52시간 근무제, 현행 근로기준법, 특별연장근로, 지방고용노동관서, 노..

정부에서 정한 기준보다 적게 초과 근무를 하다가 사망했더라도 업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노동자가 스트레스로 인한 발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면 남은 가족들이 유족급여 등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취지다.


이와 별개로 최근 법원은 직원에게 주52시간이 넘게 일하도록 시킨 업주에 대해 ‘경고성’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주52시간 근무제’를 둘러싸고 노동 현장에서의 쟁점이 더욱 첨예해지는 상황이다.


법정 노동 시간 넘지 않아도 스트레스로 발병·사망
法 “산업재해”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부장판사 이종환)는 2021년 5월 숨진 A 씨의 배우자가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하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사망 당시 50대였던 A 씨는 1996년 한 연구소에 입사해 22년 동안 연구·개발(R&D) 업무에 종사해 왔다. 그는 2019년 4월 회사 근처의 산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급히 병원에 옮겨졌지만 이틀 만에 숨졌다.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에 따른 다발성 장기 부전이었다. 유족은 A 씨가 사망에 이르기 10개월 전 행정 업무 부서에 발령받은 뒤 스트레스에 시달린 점에 비춰 볼 때 A 씨의 죽음은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급성 심근경색을 일으킬 정도로 업무 부담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거부했다. A 씨는 사망하기 전 12주 동안 주당 41시간 22분, 4주 기준으로는 주당 46시간 56분, 1주 동안 44시간 11분을 각각 근무했는데 이는 고용노동부(고용부) 고시에서 정한 업무상 질병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게 공단 측의 주장이었다.


고용부 고시에 따르면 심장 질환 발병 전 12주 동안 노동 시간이 주당 평균 60시간을 넘으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간주된다. 52시간부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더 커진다고 평가하고 있다.


법원은 A 씨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고용부 고시는 구체적인 기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데 고려할 사항을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며 “고시가 정한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 질병이 아니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무엇보다 A 씨가 사망 당시에 처했던 노동 환경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사망 10개월 전부터 팀장으로서 예산·인사·보안·기술기획·연구계획 등 업무를 총괄했다”며 “행정 업무 전반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업무량이나 범위도 방대해 상당한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이어 “기술료 배분 업무는 연구·개발자 수백 명에게 성과를 나눠 주는 것으로,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어 A 씨가 일부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고 했다. 이에 따라 “스트레스를 겪으며 과중한 업무를 수행한 게 급성 심근경색 발병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밝혔다.

과로에 결국 극단적 선택…사업주 ‘유죄’
주52시간 근무제를 두고 일선 현장에선 아직도 잡음이 일고 있다. 이를 제대로 시행하지 않아 법원이 사업주에 대해 ‘경고성’ 벌금형을 선고한 사례도 등장하는 모습이다.


2020년 8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김성훈 부장판사는 직원에게 주52시간 넘게 일하게 한 업주 B 씨에게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근로기준법을 위반했다고 본 것이다. B 씨는 서울 강남에서 전자 상거래 업체를 운영하면서 2014년 11월 24일부터 28일까지 직원 C 씨에게 52시간 넘게 일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는 C 씨가 해당 기간인 5일 동안 64시간 20분을 일한 것으로 파악했다. 근거는 C 씨의 교통 수단 사용 내역이었다. 그는 월요일에 오전 9시 20분에 출근한 뒤 다음 날 오전 6시 50분에 퇴근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렀던 것이다.


C 씨는 이후 귀가해 3시간도 쉬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출근해 11시간을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로에 시달리던 C 씨는 결국 2020년 12월 극단적 선택을 해 사망했다. 이에 노동 당국은 C 씨의 사망을 ‘업무상 재해’라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한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될 정도의 고통이 있었다면 그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숙고하는 것이 타당하고 고인의 기존 병력을 일부 고려하더라도 과중한 업무가 원인이라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고 밝혔다.


또 당시 B 씨가 회사의 대표로 있으면서 직원들이 야근을 잦게 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점도 유죄 판결의 근거로 꼽았다. B 씨가 법정 노동 시간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 조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C 씨 사망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한때 열심히 오랜 시간 일하는 것이 미덕이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적절한 노동 시간 규제를 통해 일과 여가의 균형을 잡고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가치가 근로기준법을 통해 제도화되고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당연히 과로를 요구하던 기존의 근로 관행에 따른 행위에 일정한 경고를 해야 하고 그런 측면에서 이 범행에 적절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B 씨가 확정적 고의로 범행에 이르렀다고 평가하기 어렵다”며 “사용자도 노동자의 삶의 질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노동 관계 질서의 형성에 기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적절하고 엄한 처벌만이 최선의 길은 아니다”고 부연했다.

7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도 ‘주52시간’ 적용
2021년 7월 1일부터 50인 미만이 근무하는 소규모 사업장도 ‘주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노동 시간을 1주일 기준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2018년 7월 1일 처음 시행된 이후 3년 만이다.


당국에 따르면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라 5∼49인 사업장도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의 적용을 받는다. 2018년 개정한 근로기준법은 그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고 2020년 1월 50∼299인 사업장, 2021년 7월 5∼49인 사업장으로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도록 규정했다.


2019년 사업체 현황 자료를 기준으로 5∼49인 사업장은 78만372곳이다. 해당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수는 전국적으로 780만 명에 달한다.


정부는 300인 이상 사업장과 50∼299인 사업장에 대해서는 주52시간 근무제를 위반하더라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 기간을 일정 기간 부여했지만 5∼49인 사업장은 계도 기간을 주지 않기로 했다.


다만 5∼49인 사업장 가운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5∼29인 사업장은 2022년 말까지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거치면 1주 8시간의 추가 연장 근로가 가능하도록 했다. 1주일 기준 최대 6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한 것이다.


매주 52시간을 맞출 필요 없이 전체 기간의 평균 노동 시간만 52시간 이내로 맞추면 되는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은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늘어났다. 기업이 노동 시간을 보다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게 조치하겠다는 취지다.


집중 노동이 필요할 때 52시간제의 예외를 허용하는 ‘특별연장근로’는 재해·재난뿐만 아니라 업무량 폭증 등 경영상 사유로도 노동부 인가를 받아 사용할 수 있다.


정부는 5∼49인 사업장의 주52시간 근무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지원 방안도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우선 노동 시간 단축 과정에서 신규 인력을 채용한 기업이 고용을 유지하면 1인당 최대 월 120만원씩, 최장 2년 동안 인건비를 지원한다.


인력난을 겪는 사업장에는 외국 인력을 우선 배정할 방침이다. 또 지방고용노동관서에 현장 지원단을 꾸려 관할 사업장에 맞춤형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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