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개방 중심의 통상 협상은 지는 해
디지털 혁신 환경 조성 위한 민·관 협력 중요
그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2’에서도 디지털 전환(DT : Digital Transformation)이 화두였다.
아날로그 형태의 경제 행위가 디지털 형태로 변환하는 전산화(digitization) 단계를 넘어 모든 산업이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 단계로 전환하고 있다. 향후 경제의 미래는 디지털 전환을 어떻게 활용하고 디지털 혁신을 지속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디지털 혁신을 위해 정부 정책은 다양한 측면에서 디자인돼야 한다. 먼저 디지털 기술 혁신 분야의 연구·개발(R&D) 투자 지원이다. 과거 산업 정책에 부정적 시각을 지니던 선진국 역시 전략적 R&D 투자 관련 제도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2021년 제정된 미국의 혁신경쟁법(USICA), 유럽연합(EU)의 반도체·디지털 관련 법안과 전략, 일본의 디지털 연계 산업에 R&D를 지원하고 투자하는 ‘사회 5.0’ 등이 이에 해당된다. 특히 디지털 관련 제품의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핵심 전략 제품에 대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개발하는 것은 이제 중요한 정부의 정책 과제다.
디지털 기술과 제도의 표준화 역시 디지털 혁신을 위한 중요한 요소다. 특히 디지털 전환 시대의 디지털 기술 표준은 기술 요소들의 총체적 집합체에 관한 표준화 측면에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경제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표준화 문제는 국제 논의와 합의가 전제돼야 하고 따라서 기술 선도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지난해 6월 영국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디지털 기술 표준’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됐다. 한국·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추가로 초청된 국가(G7+3) 역시 관련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합의 결과가 없어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 형태의 무역 협정에 디지털 관련 조항을 추가하거나 지역별, 관심 국가 간의 디지털 협정을 체결해 디지털 관련 제도의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 혁신이 지속할 수 있는 환경 조성 역시 중요한 요소다. 이를 위해 디지털 분야에서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 미국과 EU 등 선진국 역시 이러한 협력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응해 나가고 있다. 미국은 5세대 이동통신(5G) 이후의 통신 장비 소프트웨어 개발, 인프라 개방화, 관련 보안 문제 등을 논의하는 ‘차세대 G 동맹(Next-G Alliance)’이라는 민·관 컨소시엄을 설치했다. EU 역시 ‘5G 공공-민간 파트너십(PPP)’, ‘6G 인프라 협회’ 등 정부 지원의 총체적 민간 협회를 설립했다.
과거 시장 개방 중심의 통상 협상 전략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정부는 과학기술, 디지털 전환, 미·중 기술 패권, 공급망, 인권,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고 전략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통상 정책을 수립해 협상에 임해야 한다. 특히 기술 혁신과 통상 정책 분야에서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하며 환경·보건·인권 등의 이슈와도 연계돼 다각화하는 세부 쟁점을 검토해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산업·기술·안보 관련 대내외 정책을 효율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상위 기구의 설치를 숙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