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가치 평가…기관투자가 유입 증가, 정량적 가치 판단 위한 ‘합리적 근거’ 중요
암호화폐 가치 평가의 중요성과 방법론
정량적으로 자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을 우리는 ‘밸류에이션(valuation)’이라고 부른다.
근거가 견고해야만 충동적인 매수 매도 및 리벤지 트레이딩을 방지할 수 있고 일관적인 투자 전략을 관철할 수 있기 때문에 밸류에이션은 투자를 위한 의사 결정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역사가 깊고 수많은 스마트 머니에 의해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밸류에이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산출된 값은 사람들이 잘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의 컨센서스에서 산출된 가치와 시장 가격의 상관관계가 높다.
암호화폐에 맞는 밸류에이션 찾기
하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여전히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단기적인 희망 혹은 공포에 의해 움직이는 경향이 큰 프런티어 시장인 만큼 가격 변동성이 크다. 이 때문에 단기적으로는 시장 가격이 올바른 내재 가치에 수렴하지 않을 수 있다.
암호화폐 시장은 아직 프런티어 시장이기 때문에 누가 이 서비스를 리드하는지, 투자 라운드에 누가 들어왔는지, 최근 시장의 트렌드와 메타는 무엇인지 등 내러티브의 영향을 매우 많이 받아 가치와 가격이 불일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호화폐에 투자할 때 내러티브만 이해하더라도 큰 수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아직까지 암호화폐의 가치보다 시장 상황의 내러티브를 더 중요시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이상, 투자 자산의 적정 가치가 얼마인지 끊임없이 탐구해 알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 본인만의 합리적이고 근거 있는 투자 방식을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시장은 해가 갈수록 기관투자가의 유입이 증가하고 스마트 머니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가격 변동성이 줄어드는 효율적인 시장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미리 정량적 가치 판단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해 나가야 한다.
이 글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널리 알려진 밸류에이션 방법을 소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가치 평가에 중요한 지표들을 찾아보고 암호화폐 시장에 맞는 새로운 밸류에이션 방법론을 연구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밸류에이션은 크게 절대 가치 평가와 상대 가치 평가 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2회에 걸쳐 분류법을 소개한다. 먼저 ‘절대 가치 평가’다.
절대 가치 평가는 분석 대상의 프로토콜이 만들어 내는 현금 창출 능력에서 직접 가치를 산출해 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미래에 현금을 얼마나 만들어 낼 것인지가 밸류에이션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수익 예측을 뚜렷하게 할 수 있는 프로토콜일수록 합당한 가치를 산출해 낼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AMM 플랫폼 커브파이낸스(Curve Finance)를 예로 들어 보자. 당신은 이 플랫폼의 토큰인 CRV를 사기 위해 얼마를 지불할 의향이 있나.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하나의 CRV에 귀속될 미래의 현금을 예측해 볼 수 있다. 커브파이낸스는 수익의 50%를 토큰 보유자들에게 지급한다. 토큰 데이터 평가 플랫폼 토큰터미널(Token Terminal)에서는 한 프로토콜이 만드는 전체 수익을 총 프로토콜 수익(total protocol revenue)이라고 정의하고 있고 토큰 보유자들(대부분 스테이킹에 참여한 스테이커)에게 배당되는 수익을 프로토콜 수익(protocol revenue)이라고 정의한다.
1개의 CRV를 구매해 1개의 CRV에 배분될 미래의 프로토콜 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해 전부 더해 보자. 이렇게 산출된 값을 DCF 방법론에서는 CRV의 적정 내재 가치라고 정의할 수 있다.
DCF 방법론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총 3가지의 수치가 필요하다. A, 미래의 프로토콜 수익. B, 미래 가치를 현재 가치로 환산할 할인율. C, 잔존 가치 계산 방법이다.
이 중 미래의 프로토콜 수익은 DCF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수치다. 미래의 매출과 이익률을 예측하는 것을 ‘추정’이라고 하며 이 부분이 가장 어려운 단계다. 기간을 짧게는 3~5년, 길게는 10년까지 추정한다. 추정하는 방식은 대표적으로 ‘톱다운’과 ‘보텀업’ 방식이 있다.
톱다운 방식은 말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분석법이다. 가장 큰 시장에서 점유율과 같은 인풋을 사용해 커브파이낸스의 미래 수익을 예측하는 방법이다.
커브파이낸스는 프로토콜 내 스와프에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가 주요 수익의 근원이기 때문에 커브파이낸스의 수익은 거래량과 연관된 함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거래량을 추적하면 된다. 추정한 거래량에 거래 수수료를 곱하면 추정 수익을 얻어 낼 수 있다. 커브파이낸스는 수익의 50%를 토큰 보유자들에게 분배하고 있기 때문에 프로토콜 수익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톱다운에서 가장 큰 개념인 전체 암호화폐 시장 혹은 외환 시장에서 점차 작은 시장(커브파이낸스)까지 내려오며 분석했다면 보텀업은 바닥에 깔려 있는 여러 가지의 정보를 조합해 쌓아 올려가며 결과 값을 찾아내는 방식이다.
단, 추정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다. 자신만의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매출 추정 방식이 있다면 해당 방식을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한 가지 접근 방법만으로는 오차가 클 수 있어 톱다운과 보텀업 등 다양한 추정 프레임 워크를 구축해 비교 분석하는 것을 권장한다.
미래의 프로토콜 수익을 추정했다면 이것을 현재 가치로 가져와 다 더해 주면 된다. 이때 위험 대비 요구 수익률인 할인율을 고려해야 한다. 할인율은 ‘이 위험 자산을 구매하고 1년을 기다린다면 최소한 몇 %는 받아야 수지타산이 맞는다’라는 기회비용적인 개념이다.
커브파이낸스와 같은 암호화폐는 얼마의 할인율을 적용할 수 있을까. 지속적으로 신규 토큰이 계속 시장에 유통되는 구조라면 인플레이션에 따른 가치 하락도 할인율에 반영해 위험 대비 요구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주식 시장과 채권 시장에는 업계 표준처럼 사용되는 할인율 공식이 있지만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할인율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명확히 정의된 것이 없다.
데이터 기업 메사리(Messari)에서는 커브파이낸스의 할인율을 20%, 메이커다오의 할인율을 25%로 사용했지만 이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쉽게 생각하자면 ‘현재 CRV를 구매한다면 최소한 향후 A% 정도의 수익을 얻을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수치를 대입하면 된다. 할인율이 커지면 커질수록 적정 내재 가치는 낮아질 것이고 할인율이 작을수록 적정 내재 가치는 크게 계산된다.
암호화폐와 같이 할인율을 산정하기 모호할수록 여러 할인율을 통해 적정 가격의 ‘범위’를 적정 내재 가치로 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향후 암호화폐 시장이 더욱 성숙해짐에 따라 대부분이 동의할 수 있는 적정 할인율의 개념이 등장한다면 시장은 더욱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현금 창출 능력 등 직접 가치 산출
DCF 방법론은 추정한 미래의 현금 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 모두 더하는 것이고 짧게는 3~5년, 길게는 10년까지 추정하게 된다. 그러면 추정 기간 이후에는 어떻게 할까. 그 이후 현금 흐름의 가치를 ‘잔존 가치’라고 한다. 잔존 가치를 계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마지막 추정 연도 이후 영구적인 성장률을 가정하고 무한 등비 급수를 이용하는 방법과 마지막 추정 연도의 목표 주가수익률(PER)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여기까지 추정과 가정을 다 마쳤다면 이제 남은 것은 단순 산수다. 추정한 프로토콜 수익과 잔존 가치를 결정한 할인율을 이용해 현재 가치로 환산한 후 모두 다 더해 주면 된다.
공부하고 분석하고 직접 숫자를 계산하다 보면 ‘이럴 시간에 트위터 시황과 해외 기사를 보는 게 더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프로토콜의 숫자와 동작 구조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 자체가 투자 자산을 연구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암호화폐 투자자들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정성적인 데이터나 내러티브까지도 숫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투자는 평생의 과제다. 다음 호에서는 ‘상대 가치 평가’에 대해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