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기아·한화·포스코, ‘기업의 얼굴’ 사명 변경 바람
정체기 맞은 기존 사업 지우고 미래 비전 담아
사명 바꾸는 기업들의 브랜딩 전략
페이스북이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사명에서 주력 사업을 떼고 메타(Meta Platforms)로 탈바꿈했다.
한국에서는 기아차가 전기차를 넘어 혁신 모빌리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기아(KIA)로 사명을 교체했다.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미래 준비에 나선 기업들이 사명(社名)에서 주력 사업을 지우고 있다. 사명 변경은 수천억원의 비용이 소요되고 반드시 성공한다고 보장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간 사용해 온 사명을 변경하려는 이유는 기존 사명이 기업의 미래 방향성을 담지 못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명은 기업의 정체성과 주력 사업을 나타내는 기업의 얼굴이다. 기존에는 기업들이 이미지 쇄신, 인수·합병(M&A)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사명을 변경하는 사례가 많았다.
최근에는 경영 불확실성에 대응하고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려는 목적에 따라 사업 확장이 가능하고 미래 지향적인 이름으로 바꾸는 추세다. 전 세계적인 탈탄소화 기조, 기업 간 합종연횡, 이종 산업과의 융합이 가속화하는 시대에 특정 이미지로 고착화된 기존 사명으로는 사업 확장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 사명에 미래 비전 담은 기아
리브랜딩 1년 후 사상 최대 실적 달성
1년 전 사명과 기업 이미지(CI)를 포함한 모든 브랜드 자산의 대대적인 변화를 추진해 온 기아는 2021년 사상 최대 실적으로 리브랜딩의 효과를 증명했다.
기아는 지난해 1월 전기차를 넘어 미래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사명에서 ‘자동차’를 떼고 ‘기아(KIA)’로 새로운 사명과 로고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리브랜딩에 나섰다. 기아의 사명 변경은 1990년 3월 기아산업에서 기아차로 사명을 바꾼 지 30여 년 만이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기아차에서 기아로 사명을 변경하는 것은 곧 업(業)의 확장을 의미하며 기아는 이제 차량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을 넘어 고객에게 혁신적인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롭게 바뀐 로고는 기아의 영문 명칭 ‘KIA’를 필기체 형태로 쓴 모습이다. ‘균형(symmetry)’과 ‘리듬(rhythm)’, ‘상승(rising)’을 의미하며 이를 바탕으로 변화와 혁신을 선도하겠다는 기아의 결의를 담았다. 새로운 슬로건으로 이동과 움직임(movement)이 인류 진화의 기원이자 영감의 원천이라는 메시지가 담긴 ‘영감을 주는 움직임(movement that inspires)’을 제시했다.
기아는 지난해 영업이익이 5조657억원으로 전년 대비 145.1% 증가했고 매출액은 18.1% 늘어난 69조8624억원으로 집계됐다. 기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 세계적인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생산 차질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리브랜딩 효과 덕분이라는 평가다.
‘제2 SK이노베이션 찾아라’
확장성 있는 사명 찾기 총력전
SK그룹은 지난해부터 SK건설(SK에코플랜트), SK종합화학(SK지오센트릭), SK텔레콤(SK스퀘어), ADT캡스(SK쉴더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사업 부문(SK온)과 석유화학부문(SK어스온) 등 주요 계열사의 신규 사명을 잇달아 발표하며 재계의 사명 변경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정체기에 접어든 기존 주력 사업인 정유화학·반도체·통신에서 첨단소재·바이오·친환경·디지털 등 미래 산업으로 성장 축을 이동시키기 위한 사업 재편의 일환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2019년 경기 이천 포럼에서 “기업 이름에 에너지·화학 등이 들어가면 근본적인 변화(딥 체인지)를 꾀하기 힘들다”며 “과거엔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사회적 가치와 맞지 않을 수 있고 환경에 피해를 주는 기업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에 한정된 사명을 극복하기 위해 SK하이퍼커넥터 등 새로운 이름으로 사명 변경을 추진하다가 지난해 11월 인적 분할을 통해 반도체·정보통신기술(ICT) 투자 등 비통신 부문을 맡는 ‘SK스퀘어’를 신설했다.
광장 혹은 제곱이란 의미의 스퀘어에는 다양한 ICT 산업을 아우르며 성장하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SK스퀘어는 미래 성장 동력 창출에 집중해 2025년까지 순자산 가치를 현재의 3배인 75조원 규모로 성장시킨다는 계획이다.
SK건설은 SK에코플랜트로 사명을 변경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선도하는 아시아 최대 환경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다. SK에코플랜트는 ‘지구를 위한 친환경 아이디어와 혁신 기술을 심겠다’는 의미다.
SK종합화학도 지난해 출범 10년 만에 사명을 SK지오센트릭으로 바꿨다. 지오센트릭은 지구 중심적이라는 뜻으로,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바탕으로 탄소 사업에서 그린 사업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SK지오센트릭 사명을 개발한 인터브랜드는 “기존 사명인 SK종합화학이 ‘우리는 무슨 일을 하는가’를 표현했다면 신규 사명은 ‘우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를 표현함으로써 비즈니스와 사회적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와 세계관을 전달한다”면서 “SK지오센트릭은 지구 중심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충실히 반영한 이름”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선 SK이노베이션을 사명 변경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는다. SK이노베이션은 1962년 대한석유공사로 출발해 1980년 (주)선경의 지분 인수로 SK그룹에 편입됐다. SK그룹에서는 SK주식회사·SK에너지를 거쳐 SK이노베이션으로 사명이 3번 바뀌었다.
SK이노베이션은 사명에 기존 정유 사업을 특정하지 않고 ‘혁신’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담았는데 그 때문에 사업 영역을 확장하거나 신사업을 추진하는 데 오히려 도움을 받았다. SK그룹 내에서도 SK이노베이션이 최 회장이 강조하는 딥체인지 경영 철학에 부합하는 미래 지향적 이름으로 꼽힌다.
한화·포스코도 신성장 사업 계열사 사명 교체
ESG·미래 사업 포부 담아
한화그룹의 화학 계열사인 한화종합화학도 탄소 중립 시대를 맞아 지난해 사명에서 ‘화학’을 떼고 친환경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한화임팩트로 새로 태어났다. 삼성종합화학이 2015년 한화에 인수되면서 한화종합화학으로 사명을 바꾼 이후 6년 만의 사명 변경이다.
한화임팩트 사명에는 기존 화학 사업에 더해 수소 중심의 친환경 에너지와 모빌리티, 융합 기술 등 혁신 기술에 대한 임팩트 투자를 강화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포스코그룹에서 철강 가공 사업을 해온 포스코SPS는 모빌리티 소재·부품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포스코모빌리티솔루션으로 사명을 바꿨다. 기존 사명인 SPS는 철강가공센터만으로 인식되고 범위가 국한돼 친환경 소재·부품 사업을 지향하는 미래 비전을 표현하는 데 제한적이었다.
신규 사명은 최근 모빌리티 관련 산업의 성장과 투자가 집중되는 추세에 맞춰 차량·선박·자율주행차·드론 등 전동화 장치가 필요한 분야는 물론 배터리·연료전지 등 새로운 소재와 부품 등에 기술적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수소 경제와 ESG 경영을 추구하는 포스코 그룹의 경영 방침과 브랜드 가치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