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인의 주거 생활 안정 더욱 강조한 대법원
대출 못 갚아도 금융회사가 강제로 전세 계약 해지 못해
전세 자금이나 주택 매매 자금과 관련해 금융회사를 찾는 수요는 꾸준하다. 이런 대출 상품은 금융회사의 주요 먹거리이기도 하다. 올 들어 주택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면서 주택 자금 대출과 관련한 소송도 주목 받고 있다.
최근에는 전세를 사는 사람이 금융회사에 전세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했더라도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가 전세 계약을 해지하고 대출금을 받아갈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도 그와 상관없이 전세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7월 24일 롯데카드가 임차인 A 씨를 상대로 낸 대출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전세 대출금을 갚지 못했더라도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 아파트를 넘기는 것보다 임차인 보호가 우선이라는 취지다.
1·2심 “아파트 넘겨서라도 대출 갚아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전세 계약을 하고 아파트에 살고 있던 A 씨는 2015년 11월 롯데카드와 2년 동안 전세 자금 7000여 만원을 빌리는 대출 계약을 했다.
롯데카드와의 계약서에는 ‘대출 기간 종료로 대출금을 즉시 갚아야 할 때는 롯데카드가 요구하면 아파트를 LH에 즉시 명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대출 기간이 끝나면 A 씨가 아파트를 넘기고서라도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뜻이다.
A 씨는 2년 뒤 대출 기간이 끝났는데도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롯데카드는 대출 계약서에 쓰인 대로 아파트를 넘기고 대출금을 갚으라며 A 씨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심은 A 씨에게 대출금 변제를 명령하면서 아파트도 LH에 넘기라고 판결했다. LH가 계약을 갱신하는 조건으로 보증금을 올리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A 씨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계약 기간도 그대로 만료됐다고 판단했다.
1심은 임차인과 롯데카드 간 작성된 계약서를 판결의 근거로 들었다. 1심 재판부는 “계약서에 따르면 ‘피고는 대출 기간의 종료로 대출금을 즉시 변제해야 할 때 원고의 요구가 있는 경우 이 사건 아파트를 임대인인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즉시 명도한다’고 돼 있다”며 “또 ‘피고는 원고의 동의 없이 이 사건 임대차 계약의 연장·갱신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임대차 계약의 연장·갱신의 경우에는 반드시 원고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내용이 기재돼 있다”고 밝혔다.
또 “A 씨는 롯데카드에 대출 원금인 7130만원을 다 갚는 날까지 약정 지연 이자율인 연 24%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 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부동산을 넘겨야 하는지 판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민법 제352조를 들었다. 민법 제352조는 ‘질권 설정자는 질권자의 동의 없이 질권의 목적된 권리를 소멸하게 하거나 질권자의 이익을 해하는 변경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질권은 채무자가 돈을 갚을 때까지 채권자가 그에 대한 담보물을 갖고 있을 때 결국 돈을 갚지 못할 경우 담보물로 우선 빚을 채울 수 있는 권리다.
또 민법 제353조에 따라 돈을 빌려준 롯데카드는 제3 채무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에 임대차 보증금 반환 채권을 직접 청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에 따라 A 씨는 LH에 아파트를 인도해야 한다고 봤다.
2심의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2심 재판부는 “A 씨는 임대차 계약 중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은 민법 제652조, 주택임대차보호법 제10조에 따라 당사자 간 어떤 약정이 있다고 해도 그 효력이 없다고 주장한다”면서 “계약 체결 경위와 제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임차인에게 불리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계약, 묵시적 갱신…임대차 기간은 2년”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 중 부동산 인도 부분을 파기했다. A 씨가 대출금은 갚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살고 있는 아파트를 비울 의무는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A 씨가 롯데카드에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아파트를 임대인에게 넘길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임차인의 주거 생활 안정이라는 주택임대차보호법 취지에 비춰 전세 계약을 유지하는 것이 더 우선’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그 근거로 임대차 계약 갱신 시점에 적용되던 개정 전 ‘민간임대주책에 관한 특별법(민간임대주택법)’을 들었다.
민간임대주택법에 따르면 민간 임대 주택의 건설·공급과 관리에 관해 민간임대주택법에서 정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서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적용한다는 것. 재판부는 “주택임대차보호법을 다시 들여다보면 기간을 정하지 않거나 2년 미만으로 정한 임대차는 그 기간을 2년으로 보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또 “임대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 거절의 통지 또는 조건을 변경하지 않고 갱신하지 않겠다는 뜻의 통지를 하지 않은 경우 그 기간이 끝난 때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고 했다.
쉽게 말해 A 씨에게 집을 빌려준 LH가 전세 기간이 끝나기 6개월~1년 전에 A 씨와 전세 계약을 다시 맺지 않겠다고 알리지 않은 경우 전세 계약을 이어 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의미다.
대법원은 또 A 씨가 LH와의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지는 않았지만 LH가 계약 갱신 조건으로 제시했던 보증금 차액을 계약 기간이 끝난 뒤 모두 낸 사실에 주목했다. A 씨에게 임대차 계약을 갱신하려는 뜻이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임대차 계약이 묵시적으로 갱신되는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임대차 기간은 2년이 된다고 봐야 한다”며 “원심은 민간 임대 주택에 관한 임대차 계약 갱신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
주택 시장 달구는 ‘임대차 3법’ 뭐길래
이른바 ‘임대차 3법’이 7월 29일 국회를 모두 통과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날 전체 회의를 열고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세입자 보호를 위한 ‘임대차 3법’ 중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 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세입자는 기존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로 2년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2+2년’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임대료 상승 폭은 직전 계약 임대료의 5%를 넘을 수 없다. 구체적인 상승 비율은 지자체별로 조례를 통해 상한을 결정한다.
집주인이 직접 집에 들어와 산다거나 집주인의 부모나 자녀 등 직계존속·비속이 실거주할 계획이 있다면 계약 갱신 청구를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집주인이 허위로 세입자를 내보낸 뒤 새로운 세입자를 받으면 기존 세입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갱신으로 계약이 유지됐을 기간, 즉 계약이 끝난 지 2년 이내에 새 세입자를 받는다면 집주인은 민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손해배상금 책정 기준은 세 가지가 있다. △계약 갱신 당시 3개월 월세 △집주인이 다른 세입자에게 전월세를 주고 얻은 임대료와 거절 당시 임대료 간 차액의 2년 분 △갱신 거절로 인해 입은 손해액 중 가장 큰 액수로 정해진다.
3법 중 하나인 ‘전월세 신고제’는 신고 시스템 구축 등의 이유로 내년 6월 도입될 예정이다. 전월세 신고제는 전월세 거래를 하면 30일 이내에 임대차 계약과 관련한 내용을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게 하는 의무를 담은 법안이다. 계약을 변경하거나 해지할 때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