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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인류는 어떻게 천연두와 콜레라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2부 / 전염병, 팬데믹, 스페인 독감, K방역, 킹덤, 서비, 호열자병, 예방접종, 공중보건, 코흐, 백신, 미생물, 존스노우, 미아스마설, 세균

공중보건과 위생수준의 향상에 기여한 콜레라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한 우선적인 방법은 공중위생을 철저히 하는 것이다. 특히 수인성 전염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위생적인 식수원을 제공해야만 한다. 수인성 전염병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 중 공중보건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나아가 공중보건법을 입법화시킨 주역은 콜레라였다.


콜레라는 본래 인도 벵골지역의 풍토병이었으나, 영국이 18세기 말 인도를 점령하면서 영국을 포함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감염의 속도가 폭발적이었고 치명률3 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전염병의 챔피언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 결과 콜레라는 19세기 전염병 중 가장 치명적인 병이 되었다.


환자가 콜레라 세균에 접촉되면 평균 2~3일의 잠복기간을 거쳐 물 같은 설사가 시작된다. 하루 20~30차례의 설사가 진행되는데 이 과정에서 거의 20리터의 체액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그 결과 극심한 탈수현상을 초래하고, 불과 며칠 내에 사망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이 치명적인 콜레라의 발생 원인과 대응방법을 밝혀낸 것은 영국의 의사인 존 스노우(John Snow, 1813~1858)였다. 1831년 당시 외과 견습생이었던 존 스노우는 런던의 콜레라 유행을 처음 경험하면서 ‘나쁜 공기’에 의해 병이 전염된다는 미아스마설(Miasma Theory)과는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다. 나쁜 공기를 들이마셨다면 폐에서 문제가 발생하여야 하는데, 위장에서 병이 발생한다는 것은 모순이라 여겼던 것이다.

이후 그는 콜레라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1835년에 콜레라가 런던에서 재유행할 때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게 된다. 스노우는 런던 시민들이 2개의 상수도 회사에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두 그룹 사이에 콜레라 발병률이 14배나 되는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스노우는 이를 역학 조사함으로써 콜레라가 오염된 물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당시는 미생물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이었기에 세균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존 스노우가 시도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역학조사는 깨끗한 물을 식수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공중위생의 중요성을 제기하였으며 콜레라를 극복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콜레라의 원인균이 밝혀진 것은 1883년 독일의 세균학자인 코흐(Heinrich Hermann Robert Koch, 1843~1910) 에 의해서이며, 콜레라 백신은 1893년 하프킨(Waldemar Mordecal Haffkine, 1860~1930)에 의해 개발되었다. 1884년에 스페인에서도 백신이 개발되었지만 다른 나라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기에 9년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하프킨에 의해 개발된 콜레라 백신으로 인해 20~40%이던 콜레라 사망률이 2%까지 떨어졌다.

기록으로 볼 때 조선에 콜레라가 등장한 것은 1821년 순조 21년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괴질’이라고 기록되었지만, 그 병세를 설명한 내용에 의하면 콜레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1821년 7월에 발생한 콜레라는 불과 한 달 만에 인해(人海) 수십만 명이 사망하였으며, 다음 해인 1822년 4월까지 2년간에 걸쳐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다.

 


괴질로 불리던 콜레라는 19세기 말부터 ‘호열자(虎列刺)’라고 불렸는데 콜레라에 대한 음역어인 동시에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것과 같이 고통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한말 호열자의 유행이 극심했고 1895년 고종은 <호열자병 예방규칙> 등을 공포하며 콜레라에 대한 국가적인 관리를 시작한다. 서찬규의 개인 일기인 『저상일월』에도 당시 호열자 유행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902년 9월에 콜레라라는 병이 동래에서 먼저 발생하여 일본인들이 죽었으며, 괴질이 불꽃같이 성하게 타올라서 전국으로 퍼졌으며, 조정의 대신들도 죽었다고 한다. 이 기록을 통해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출입하게 된 항구를 중심으로 감염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 콜레라 백신이 생산되고 예방접종이 시작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다. 콜레라 예방접종은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적으로 실시되었으며, 집중적인 예방접종과 함께 공중보건과 위생 수준이 향상되면서 콜레라 발병이 거의 사라지자 1982년부터는 임의 접종으로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마음을 놓을 때는 아니다. 콜레라균에 오염된 해산물을 날것이나 덜 익은 채로 섭취하게 되면 언제라도 콜레라에 걸릴 수 있다. 2001년에도 162명의 콜레라 환자가 발생하였던 것이 그 사례다. 어쨌든 콜레라는 인간 문명을 보다 청결하고 위생적인 방향으로 몇 단계 향상시키는 데에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전염병과 싸워온 수많은 당신들 #덕분에챌린지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전염병의 역사에 대해 많은 공부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1세기에도 각 나라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전염병을 겪어내는 모습이 사뭇 다른데, 지금보다 모든 것이 더 열악했던 시절에는 어떻게 전염병을 이겨냈을지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비교적 최근의 팬데믹(Pandemic)5인 1918년 스페인독감의 사례만 생각해보아도, 전 세계 인구 중 5천만 명이 사망했다고 하는데, 당시 전 세계 평균 치명률이 약 4%인 것을 반영해보면 약 12억 5천만명이 이 병에 감염되었다고 추산해볼 수 있다. 이들을 돌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의료진들이 헌신하고 희생해야 했을까.

 


전염병과 싸워온 의료진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이겨내는 동시에 공포에 질린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독려해야 했을 것이다. 또한, 과학자이자 의사로서의 전염병에 대한 고민과 치료방법에 대한 혁신적 고안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의 행적을 살펴볼수록 감탄과 경이를 그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최근 시행되고 있는 #덕분에챌린지를 이 시대의 의료진들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전염병의 극복과 치료에 기여해온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런 우리들의 감사에 대해 그들이 크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해도 그리 서운해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K방역의 성과에 대해 호들갑을 떨며 기뻐하다가도 뉴스특보에서 확진자가 다시 증가하고 있다거나, 코로나19 돌연변이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고 앞으로 어쩌나 싶은 생각에 종종 한숨을 내쉬는 것이 현실에서의 우리들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렇게 소심하고 자주 흔들리는 우리 시민들에게 예의 차분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킹덤'의 의녀 서비가 극 중에서 한 말이다.

"아무리 끔찍한 병도 막을 방도가 있었습니다. 이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풀을 좀 더 살펴보면 분명 막을 수 있는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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