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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도 잘 팔려”, H&M, 아디다스도 반한 효성의 페트병 재활용 원사 / 리젠, 효성티앤씨, ESG, MZ세대, 프렌즈 그린라이프, 플리츠마마, 폴리에스터칩, 구찌, 에르메스, 샤넬, 프라다, 나이키

 

버려진 투명 페트병을 원료로 만든 친환경 섬유 리젠 원사 /효성티앤씨 제공

우리가 흔히 입는 합성 섬유로 만들어진 옷들은 생산 과정에서 많은 화학 제품을 사용하고 분해 과정에서도 많은 미세 플라스틱을 배출한다. 완전히 썩기까지는 200년 이상이 걸린다. 환경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패션업계는 지속 가능한 패션을 고민하며 친환경 섬유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 까다로운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의 눈에 들어온 친환경 섬유가 있었다. 버려진 투명 페트병에서 뽑은 원사로 만든 친환경 폴리에스터 섬유 ‘리젠(regen)’이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가 기업의 선택이 아닌 필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으면서 기업들은 친환경·사회적 가치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미닝아웃 소비를 중시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겨냥해 재활용 소재를 활용해 친환경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친환경 섬유를 찾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리젠을 만드는 효성티앤씨도 덩달아 바빠지고 있다. 마스크·티셔츠·가방 등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과 협업을 진행하고 있는 효성티앤씨는 최근 카카오프렌즈의 친환경 제품 라인 ‘프렌즈 그린라이프’ 제품에 리젠을 공급했다.

 

나일론 리사이클 섬유 마이판 리젠 /효성티앤씨 제공

 

버려진 투명 페트병이 옷으로 재탄생

 

리젠의 원료는 100% 페트병이다. 버려진 투명 페트병을 깨끗이 세척해 칩(chip) 형태로 만든 후 의류용 원사를 뽑아낸다. 이 원사로 운동화·가방·옷 등을 만들 수 있는데 보통 운동화에는 500mL 페트병 11개가 필요하다. 가방은 16개, 셔츠는 27개, 롱패딩은 60개의 페트병이 사용된다.


한국에서는 폐 페트병 배출과 회수 과정에서 이물질 등이 섞여 재생 원료로 활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일본과 대만 등에서 연간 약 2만2000톤의 폐 페트병을 수입해 왔다. 한국에서 회수되는 폐페트병은 라벨이 제거돼 있지 않는 등 고품질 원료로 재활용되기에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효성티앤씨가 제주도·서울시·환경부 등 지방자치단체(지자체)들과 자원 순환 체계 구축 업무 협약(MOU)을 체결한 것도 폐페트병 수거 시스템을 위한 것이었다. 제주도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으로 만든 ‘리젠 제주’는 플리츠마마의 가방으로 재탄생했고 서울시에서 수거한 폐페트병으로 만든 ‘리젠 서울’은 ‘러브 서울’이라는 의류로 제작됐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칩은 일반적인 폴리에스터 칩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40~50% 정도 감소 효과가 있다. 페트병은 썩는 데 500년이 걸린다. 리젠은 원사 1kg당 500mL 페트병 50개를 재활용할 수 있고 폐기 또는 소각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도 줄일 수 있다. 가장 큰 단점은 가격이다. 의류용에 사용되는 고순도의 장섬유 용도는 투명한 페트병을 수거한 뒤 라벨 등 이물을 제거하는 별도의 생산 라인 구축이 필수다.


일반적인 폴리에스터 원사보다 선별과 세척 등의 과정을 더 거치기 때문에 가격도 더 비싸다. 박용준 효성티앤씨 스마트섬유팀 팀장은 “수거·분류·세척 등의 과정을 거쳐야만 의류용 섬유로 활용할 수 있어 일반 폴리에스터 대비 가격이 1.5배 이상 비싸고 시장가도 1.5배 이상 높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리젠을 찾는 수요는 계속 늘고 있다. 2019년 8월 G7 정상회의에서 구찌·에르메스·샤넬·프라다·H&M·나이키·아디다스 등 32개 글로벌 기업의 150여 개 브랜드가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패션 협약을 체결하면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도 달라졌다. 디자인과 기능만 고려하던 소비자들이 이제는 티셔츠 하나를 고르더라도 얼마나 친환경적으로 생산됐는지 꼼꼼하게 따지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패스트 패션의 대표주자인 스웨덴의 H&M이 2030년까지 모든 옷을 재활용 소재 또는 지속 가능한 소재로만 만들기로 했고 독일의 아디다스는 2024년까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만든 소재를 적용하겠다며 해양에서 수거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운동화를 시장에 내놓고 있다.

13년 전 개발한 친환경 섬유가 성장 동력으로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친환경 섬유 사용이 확대되면서 세계 친환경 섬유 시장 규모는 2018년 375억 달러(약 41조5687억원)에서 2025년 690억 달러(약 76조4865억원)로 연평균 9.2%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동차 부품 등 산업용 신규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시장이 커지면서 효성티앤씨 폴리에스터 원사 매출에서 리사이클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높아지고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0.5%에 불과했던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비율은 2020년 상반기 기준 3.1%까지 올랐다.


효성티앤씨는 2000년대 초반부터 친환경 섬유 개발을 시작했고 2008년 친환경 섬유인 리젠을 만들었다. 남들보다 앞선 기술 개발 덕분에 폴리에스터·나일론·스판덱스 등 주요 섬유 3종 모두 재활용 섬유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아웃도어 백팩 브랜드 오스프리에 산업 부산물을 재활용해 만든 친환경 고강력 나일론 섬유인 마이판 리젠 로빅을 공급하기도 했다.


ESG 이슈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효성티앤씨가 친환경 섬유 개발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환경적이면서도 편안하고 기능이 뛰어난 옷을 원하는 글로벌 브랜드 고객사의 소비자 요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친환경 시장 선점을 위한 경영진의 빠른 의사 결정과 고객의 고객이 내는 목소리(VOCC)까지 경청해 만족시킬 수 있는 기술과 제품 개발을 강조하는 효성그룹의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리젠이 탄생한 것이다.

 

효성티앤씨·제주삼다수(제주개발공사)·노스페이스(영원아웃도어)가 협업해 친환경 섬유 ‘리젠 제주’로 만들어진 스웨트셔츠 /효성티앤씨 제공

리젠은 품질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 등 사회적 요구와 화학 물질 관리 시스템, 물 사용, 폐수 사용 처리 등 환경적 요구까지 충족시키고 있다. 리젠은 글로벌 친환경 인증 기관인 네덜란드의 컨트롤 유니언으로부터 세계 최초로 폴리에스터 재활용 섬유 부문의 국제 재활용 인증(GRS)을 받았다.


또한 원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인체나 환경에 유해한 물질이 있는지 검증하는 에코텍스 스탠더드 100(oekotex standard 100) 인증도 획득해 친환경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효성티앤씨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의 ‘2020년 상장 기업 ESG 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다. 리젠이 까다로운 현장 실사(audit)로 유명한 아디다스·H&M·자라 등 글로벌 브랜드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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