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팬데믹 이전 항공업계의 수익원은 단연 ‘국제선’이었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항공사의 전체 여객 매출액 대비 국제선 여객의 비율은 90%를 차지했다.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 수요가 묶이면서 항공사들은 국내선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국내선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자, 항공사들은 공격적으로 운임을 낮추고 있다. 항공업계의 ‘치킨 게임’이 도래한 것이다.
국내선 여객 수, 전년 대비 136% 증가
국토교통부 항공 포털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선 항공 여객 수는 250만599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6% 급증했다. 국제선 여객 수가 18만4211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4% 감소한 것과 뚜렷하게 비교된다. 국내선 운항편은 1만7166편으로 118.6% 증가했다. 반면 국제선 운항편은 1만1172편으로 전년 동기 대비 6.1% 감소했다.
항공사별로는 저비용 항공사(LCC)가 대형 항공사(FSC)보다 공격적으로 국내선을 운항했다. 지난 3월 제주항공은 3149편, 진에어는 2992편 운항으로 대한항공 2616편, 아시아나항공 2540편보다 국내선을 많이 운항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3월에는 대한항공이 4473편, 아시아나항공이 2712편으로 제주항공 2172편, 진에어 1425편보다 더 많이 국내선을 운항했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항공사들은 마케팅을 통해 늘어나는 국내선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4월 27일까지 국내선 ‘얼리버드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6월 1일부터 7월 18일까지 탑승하는 김포~제주, 광주~제주, 여수~제주, 청주~제주, 대구~제주, 김포~광주, 김포~여수 항공권에 특가가 적용된다. 이번 프로모션은 6~7월 휴가 일정을 계획한 여행객들에게 유리한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한 차원이다. 김포~제주 노선이 편도 총액 기준으로 2만5200원이고 여수~제주는 2만200원이다.
특히 LCC들은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화물로 이익 창출이 불가능한 LCC들에 국내선은 유일한 ‘기댈 곳’이기 때문이다.
제주항공은 가정의 달을 맞아 5월 9일까지 국내선 특가 항공권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유류 할증료와 공항 시설 사용료를 포함한 편도 총액 운임 기준으로 김포·군산·청주·광주·부산·대구·여수·무안발 제주 노선을 9200원부터 판매한다. 또한 김포발 부산·광주·여수 등 노선은 1만5100원부터 판매한다.
티웨이항공은 4월 25일까지 홈페이지와 애플리케이션에서 5~6월 항공권을 특가로 선보인다. 편도 총액 기준으로 김포~제주 1만4900원, 김포~부산 1만5100원이다.
에어서울은 국내 전 노선을 원하는 만큼 무제한으로 탑승할 수 있는 ‘민트패스’ 국내선 버전을 출시했다. 4월 29일부터 11번가와 함께 판매 중이다. 국내선 민트패스는 김포~제주, 김포~부산(김해), 부산(김해)~제주 등 에어서울이 취항하는 국내 전 노선에서 이용할 수 있는 여행 패스로, 원하는 만큼 동일 노선의 중복 사용도 가능하다.
결국 항공 업황, 결국 국제선 회복에 달려
코로나19 사태로 취항에 어려움을 겪었던 신생 항공사들도 국내선을 시작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지난 4월 15일 신생 LCC 에어로케이항공이 청주~제주 노선에 하루 3회 취항을 시작했다.
항공사들, 특히 LCC들이 국내선 영업에 집중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LCC는 소형의 단일 기종을 이용해 대부분 5시간 이내의 노선에 취항한다”며 “중국·미국·일본 등에 비해 국내 시장이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국내선에서 출혈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항공 산업의 특성상 국내선을 꼭 운영해야만 하는 이유도 있다. 해외 노선 취항이 어려워 발목이 묶였지만 비행기를 그라운드에 놓아 두면 고정비가 발생한다. 허 교수는 “조종사의 면허 유지, 기재의 유지 비행을 위해 운항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름값이나 인건비 등을 충당할 수 있다면 비행기를 띄우는 편이 낫다”며 국내선 포화의 원인을 지적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특가 마케팅으로 제주행 노선이 ‘커피값’보다 싸지면서 항공사들의 실적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LCC 관계자는 “국내선 영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사실 항공사들의 ‘제 살 깎아 먹기’가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항공업계가 살아나기 위해선 국제선 여객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한국은 국제선 여객 비중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럽 항공사들과는 실적 회복의 조건이 다르다”며 국내선으로 몰리는 여객 수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좀처럼 감소하지 않는 것도 불안 요소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항공사들은 국내선에서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모색 중이다. 여행지와 연계한 관광 상품과 무착륙 비행, 연예인 팬미팅 등 여러 상품을 내놓고 있다. 항공 운송 사업은 유사한 기재를 투입하기 때문에 서비스와 노선에서 차별화돼야 한다. 하지만 좁은 국내 시장에서 네트워크를 다양화하거나 가격을 차별화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
허희영 교수는 “단기적으로 국내 노선에서는 정기 노선 외에 김포·제주·김해공항을 제외한 11개 지방 공항을 이용해 해외로 나가지 못하는 여행 수요를 부정기 항공 방식으로 흡수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목적지 없이 돌아오는 여행 상품보다 지방 공항을 이용한 투어 상품 개발이 효과적”이라며 “‘그 나물에 그 밥’으로는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