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가입자 성장세가 주춤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상반기에만 2700만 명 가까운 신규 유저를 얻었지만 이후 1년 동안 가입자가 약 1600만 명 순증해 예년의 속도를 크게 밑돌았다. 디즈니 등 미국 전통 미디어들이 스트리밍에 보다 힘을 주고 있고 로컬 스트리밍 서비스도 반격을 준비 중이다. 넷플릭스가 성장성 관련 우려를 피해 가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미디어업계 혁신의 아이콘답게 생각보다 빠른 대응책을 내놓았다. 지난 6월 자체 상품기획(MD) 숍 ‘넷플릭스숍’을 론칭하면서부터다. 아직 미국에서만 구매할 수 있지만 수개월 안에 다른 나라에도 서비스된다. 오리지널 콘텐츠 지식재산(IP)을 기반으로 의류·라이프스타일 제품을 한정 제작해 판매할 계획이다.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기묘한 이야기’와 ‘위처’, ‘뤼팽’ 등 팬덤이 확보된 콘텐츠 기반 상품의 판매가 먼저 시작됐다.
넷플릭스는 또한 7월 2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게임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블랙미러 : 밴더스내치’와 같이 기존에 공개한 인터랙티브형 콘텐츠(시청자 선택에 따라 시나리오가 변화)의 게임성을 살려 모바일 게임을 서비스할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는 MD 숍과 게임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고 있을까. 넷플릭스가 처한 위기와 최근 신사업 진출의 배경은 꽤 복잡하고 심오한 문제일 것으로 생각한다.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OTT) 선구자로서 미디어 판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태생적 두 가지 한계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째 한계는 콘텐츠 관련 밸류체인이 짧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매출에 100% 의존한다. 콘텐츠 기반의 수익 창출은 오로지 구독료 과금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이는 디즈니의 소비자 직접 의뢰(DTC) 매출이 전 사 매출액의 30% 미만인 상황과 대조적이다. 디즈니는 폭넓은 밸류체인을 통해 기대 수익을 최대화한다. 자연히 콘텐츠 투자를 키울 유인이 있고 이는 넷플릭스와 격차를 만들 수 있다.
둘째, 넷플릭스는 콘텐츠 없이 단순 플랫폼으로 출발해 IP 파워가 전통 미디어에 비해 약하다. 10여 년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오리지널 자체 제작에 힘써 왔지만 역사가 짧은 만큼 축적된 콘텐츠 프랜차이즈의 인지도와 숫자가 디즈니·워너 계열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다. 구독자의 시간 점유가 최대 과제인 미디어 업체에 콘텐츠 측면의 약점은 치명적이다.
여기에 더해 OTT 영역에서 중요 어드밴티지를 가진 전통 미디어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선구자로 시간을 벌어둔 넷플릭스는 후발 주자와 동등한 경쟁을 하기 위해 태생적 격차를 좁혀야 한다. 전술한 두 가지 한계점은 OTT 시장 선제 진출로 얻어낸 ‘골든타임’ 안에 넷플릭스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게임 진출은 시간 점유 경쟁의 범위를 ‘영상 콘텐츠’에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전환시키는 움직임이다. 굳이 열세인 영역에서 경쟁하지 않겠다는 창의적 발상으로 넷플릭스의 상대적 불리함을 해소할 수 있는 묘안이다. 만일 이 접근이 크게 성공한다면 후발 경쟁 미디어 업체에 새로운 투자 니즈를 자극하면서 또다시 선구자적 위치를 한동안 확보할 수도 있다.
MD 숍은 스트리밍에만 의존해 온 넷플릭스의 밸류체인을 다변화하는 시도다. 미디어 업체의 이상향과 같은, 디즈니의 길고 공고한 밸류체인 구성에 한 발 다가가기 위한 움직임이다. 구독 경험을 해치지 않으면서 MD 커머스 모델을 안착시키는 데 성공하는 그림을 상상해 보자. 디즈니가 오프라인 영화관과 디즈니랜드를 통해 구축한 체계를 넷플릭스는 온라인 환경에서 OTT와 MD 숍을 통해 재창조할 가능성이 있다.
남들보다 확실히 앞서지 못한 상황에서 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넷플릭스의 운명이 언뜻 기구해 보인다. 하지만 콘텐츠와 밸류체인의 한계는 역설적으로 과거 넷플릭스의 혁신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선점한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레거시 미디어보다 빨리 스트리밍에 올인할 수 있었다.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에 오리지널 제작에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지금의 모바일 게임 진출과 온라인 쇼핑 론칭도 선구자의 습관이 깃든 재빠른 의사 결정으로 볼 수 있다. 긍정적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