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Fed)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주목 받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처럼 Fed 위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증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적은 드물다. 세계 최대 규모인 뉴욕 증시를 끌어올린 게 다름 아닌 Fed였기 때문이다.
Fed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유행)이 발생했던 작년 3월 이례적으로 두 차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 금리를 현행 0.00~0.25%로 낮추는 ‘빅컷(big cut)’을 단행했다. 사실상의 제로 금리다. 같은 해 6월부터는 매달 1200억 달러의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해 왔다. 뉴욕 증시의 주요 지수들이 두 배 이상 급등했던 결정적 배경이다.
12명의 FOMC 위원 입에 쏠리는 관심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유동성의 수도꼭지를 잠그고 금리를 다시 올릴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광범위한 백신 보급과 집중적인 재정 부양책 덕분에 경기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Fed가 긴축 절차를 밟으면 세계 증시는 타격을 받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투자자들이 긴축 시점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Fed의 긴축 수단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채권 매입액을 서서히 줄여 나가는 테이퍼링(tapering)을 시작하고 테이퍼링 종료 이후 기준 금리를 올리는 조치다.
Fed는 그동안 정책 변경의 전제 조건으로 물가와 고용 지표 변화를 들어 왔다. 일정 기간 2.0%를 완만하게 초과하는 물가 상승률과 함께 최대 고용을 향한 실질적인 진전이 나타나면 테이퍼링에 착수할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물가 지표는 매달 말 상무부가 내놓는 개인 소비 지출(PCE) 가격지수 기준이다. 특히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음료를 제외한 근원 물가를 쓴다. PCE 근원 물가는 지난 4월부터 3개월 연속으로 3.0%를 초과했다. 물가 지표만 놓고 보면 Fed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고용이다. Fed 목표치인 ‘최대 고용’은 팬데믹 직전이던 작년 2월의 경제 활황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3.5%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올 들어 지속적으로 5~6%대에서 횡보하고 있는 만큼 Fed 목표치에 근접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Fed가 7월 말 FOMC 성명에서 “고용 상황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밝혔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별도 기자 회견에서 “테이퍼링에 나서려면 고용 회복이 더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Fed의 통화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FOMC 위원들이다. 총 12명으로 구성된다. 정례 회의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발언엔 상당한 비중이 실린다. FOMC 위원들은 1년에 8차례 열리는 정례 회의 직전 1주일(블랙아웃 기간)을 빼놓고는 자유롭게 개인 의견을 쏟아낸다. 발언이 전해질 때마다 주가가 들썩이기 일쑤다.
Fed의 이사(governor) 7명은 FOMC의 당연직 위원이다. 임기가 14년인 Fed 이사에 선임되면 FOMC에 참가해 무조건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다. 파월 의장과 리처드 클라리다 부의장, 랜디 퀄스 부의장(감독 담당), 레이얼 브레이너드 이사, 미셸 보먼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한 명이 공석이어서 현재는 6명뿐이다.
나머지는 12개의 각 지역 연방은행 총재(president)들이 1년씩 돌아가며 FOMC 위원을 맡는다. 지역 연방은행 중 핵심인 뉴욕 연방은행 총재만 당연직이다. 매년 5명의 연방은행 총재(뉴욕 포함)가 FOMC에 참석한다.
올해 FOMC 위원을 맡은 인사는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은행 총재(FOMC 부의장 겸임)와 토머스 바킨 리치몬드 연방은행 총재,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은행 총재,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은행 총재,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은행 총재 등이다.
내년엔 FOMC 참석자가 바뀐다. 대표적인 매파로 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은행 총재와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은행 총재, 에스더 조지 캔자스시티 연방은행 총재,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은행 총재 등이 새 얼굴이다.
바이든, Fed 내 대대적 인적 쇄신 나설까
Fed 내 인적 쇄신이 이뤄질 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파월 의장의 임기가 내년 2월로 바짝 다가왔기 때문이다. 의장의 임기는 4년인데, 직전 재닛 옐런 전 의장(현 재무장관)을 빼놓고선 대체로 연임해 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월 의장이 정치권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여성 등 새 얼굴을 내세우라는 요구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의장을 포함한 Fed 이사진은 대통령이 지명하고 상원이 인준해야 임기를 시작할 수 있다.
월가에선 2018년 2월 5일 취임한 파월 의장의 연임 가능성을 좀 더 높게 보고 있다. 경기 회복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데다 팬데믹 상황에서 ‘정책 수장’을 교체하는 데 따른 부담이 작지 않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수차례 대립각을 세웠던 파월 의장이 바이든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점도 유리한 부분이다. Fed 수장 인선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최근 “Fed가 잘해 왔다”고 파월 의장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공화당원이란 점이 마이너스 요인으로 꼽힌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선 민주당 출신의 새 얼굴을 내세우고 싶어 할 수 있다.
강력한 후보도 이미 등장해 있다. 6명의 Fed 이사 중 유일한 민주당 소속이자 여성인 레이얼 브레이너드 이사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바이든 정부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막판까지 거론됐던 인물이다.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재무부 관료로 일하기도 했다.
파월 의장 대신 브레이너드 이사가 Fed의 조종간을 새로 잡는다면 통화 정책이 좀 더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가 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7월 말 “올해 12월이나 이보다 조금 이른 시점이 돼야 고용의 추가 진전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때까지는 테이퍼링을 논의하는 게 시기상조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별도로 Fed 이사 중 2인자인 클라리다 부의장의 임기는 내년 1월 말 만료된다. 퀄스 부의장의 임기는 오는 10월까지다. Fed 내 쇄신 바람이 불 수 있다.
Fed의 통화 정책이 예상과 다른 경로를 채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델타 변이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등 경기 회복 속도에 영향을 끼칠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경제 예측만 해도 그렇다. Fed는 지난 6월 FOMC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을 7.0%로, 3개월 만에 0.5%포인트 높여 잡았다. 소비가 살아나고 있어 ‘V자형’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8~9% 고성장했을 것으로 봤던 2분기 경제성장률이 6.5%(전 분기 대비 연율 기준 속보치)에 그쳤다. 당초 6.4%로 집계했던 1분기 성장률은 6.3%로 하향 조정됐다. 반도체 칩 부족 현상이 장기화하는 데다 기업 인력난이 가중되면서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 결과다.
Fed는 9월 FOMC에서 올해 성장률이 되레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했다. 경기가 2분기에 사실상 정점을 찍은 만큼 올해 성장률이 Fed의 예측처럼 7%대에 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델타 변이는 3분기에 속하는 7월 초부터 본격 확산되기 시작했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해 온 Fed도 경제 상황에 따라 쉽게 얼굴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월가의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