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찾은 조직에서 ‘감정’이 중요한 이유
본인 감정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드러내야 조직이 성장할 수 있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동화 작가 고문영(서예지 분)은 어릴 때부터 혼자 지냈다. 그래서 외로움을 당연시하며 살아왔다. ‘사랑’이라는 게 뭔지 모를 수밖에 없는 그녀에게 자폐를 앓고 있는 형을 돌보는 한 남자 문강태(김수현 분)가 등장한다.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아 역시 사랑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문강태. 이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변해 가는 모습을 담은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 관한 얘기다.
너무 드라마틱한 설정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최근 조사한 콘텐츠 영향력 평가지수에서 2위까지 차지하며 회자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공감을 충분히 얻어내는 듯하다.
다른 세상의 사람들 얘기 같지만 우리 일상과 맞닿아 있는 이 드라마에서 더 나은 성과를 올리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갖춰야 할 것들을 찾아보자.
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모인 곳이 조직
우선 읽던 글을 멈추고 잠시 생각해 보자. 우리가 일상 혹은 조직에서 일하다가 느끼는 정서와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몇 개 떠오르는가.
아침잠을 이기기 위한 ‘피곤함’,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느껴지는 ‘답답함’, 퇴근 시간이 오지 않아 느껴지는 ‘지루함’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생각을 돕기 위해 영화의 힘을 빌려보자. ‘인사이드 아웃’이라는 애니매이션 영화에는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5가지 감정이 캐릭터로 등장한다. 이 정도의 감정이라도 떠올랐다면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이 5가지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전부는 당연히 아니다. 빨간색을 나타낼 때도 ‘빨갛다’, ‘벌겋다’, ‘불그스름하다’ 등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감정에는 얼마나 많은 표현이 있을 수 있을까.
무서운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도 ‘섬뜩하다’, ‘오싹하다’, ‘진땀나다’와 같이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른 뉘앙스를 주는 표현들이 많다. 다시 말해 사람은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 간과한다. 그래서 흔히 ‘짜증나’에 많은 것을 담는다. 기껏 열심히 보고서를 썼는데 갑자기 상사가 ‘그 일 안 하기로 했어’라고 말하면 짜증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건 억울한 것이다. 옷을 잘 차려입고 중요한 약속을 가는 중에 차가 지나가며 웅덩이에 고인 물을 튀어 엉망이 됐다. 역시 짜증이 확 올라오지만 달리 생각하면 약속에 제대로 갈 수 없어 당황스럽다.
이 때문에 김영하 작가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한 학기 동안 ‘짜증난다’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묘사해야 하는 작가라면 ‘짜증난다’고 쉽게 내뱉는 말 때문에 진짜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을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는 게 김영하 작가의 설명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궁금증이 든다. 우리가 작가도 아닌데 조직 내에서 감정을 제대로 알고 정확히 표현하는 게 왜 중요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조직은 ‘혼자’가 아니다. 생각·배경·이해관계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아무리 자신이 이성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감정은 드러난다. 똑같은 메시지, 하나의 말을 해도 여기에 어떤 감정을 실어 어떤 뉘앙스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고마운 조언이 되기도 하고 귀찮은 간섭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하지 않았는가. 수사학의 3가지 요소인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 중 제일 중요한 게 파토스, 즉 감정적 요소라고 말이다.
그런데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정확히 모르면 제대로 된 표현, 다시 말해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이런 감정 인식은 특히 리더에게 더 중요하다.
리더의 감정 하나로 구성원 개개인의, 나아가 조직 전체의 분위기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더의 정확한 감정 인식, 자기 인식과 정확한 표현이 중요하다.
감정을 제대로 인지해야 해결 방법도 찾는다
자신이 뭘 느끼는지 알면, 다시 말해 그 감정을 제대로 인지하면 그것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맨 처음의 드라마 얘기로 돌아가 보자. 자폐 형을 돌보고 있는 문강태는 어린 시절 엄마의 관심이 ‘아픈 형’에게만 가는 게 싫어 형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성인이 된 어느 순간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던 형이 과거 본인이 ‘나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때 그가 형에 대해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당연히 미안함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걸 굳이 미안해해야 하나’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랑을 받지 못한 자기가 억울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 그래서 이때 미안하다는 감정보다 ‘억울함’이란 감정을 먼저 떠올리면 어떻게 될까.
“너도 내가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잖아”라고 행패 부리며 소리 지르는 형에게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반박할지 모른다. 그게 자신을 보호하는 행동이라고, 자기를 더 강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관계만 더 나빠질 뿐이다.
필요한 것은 ‘미안함’이라는 감정을 나타내고 사과하는 것이다. 사실에 기반한 ‘진짜’ 사과가 필요하다. 드라마 속 인물의 대응 역시 이랬다.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동생에게 형이 “뭘 잘못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문강태는 “다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
이 때문일까. 상처 받았을 형이 오히려 동생을 안아주며 토닥여 준다. 이 장면을 본 사람들 중에서는 “드라마니까 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사과하게 된 동생의 마음이다. 자신이 느끼는 정서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솔직하게 대응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비록 눈에 보이기엔 상대에게 ‘지는 것’ 같아도 그래야 해결된다.
예를 들어 리더인 자신의 실수로 일이 틀어져 생긴 부끄러운 감정을 괜히 구성원이나 환경에 대한 짜증으로 표현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거나 정보가 부족해 제대로 된 결정과 행동을 하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수고한 구성원에게 미안함을 표현해야 한다.
구성원의 역량이 부족해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때 생기는 안타까움과 답답함을 분노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충분히 역량을 키워 주지 못했음을, 시간을 더 주고 나아질 기회를 줄 수 없었음에 안타까워하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확한 개선 피드백을 제시하는 게 좋다.
오해하지는 말자. 언짢은데 좋은 척, 화나는 데 이해하는 척, 좋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포장하라는 게 아니다. 현재 자기 감정이 어떤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직면’하자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아 보이는 상대방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수 있다. 괜히 아닌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게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 센 척하면 상대 역시 세게 나올 수밖에 없다.
타인이 보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자기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받아들이고 드러내자. 어떨 땐 그게 부끄럽기도 하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야 할 수도 있고 자기의 속내를 드러내는 게 약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본인 말고는 다 알고 있다. 저 사람이 지금 ‘일부러’ 과장해서 저런다고 말이다. 사실은 부끄러운 것인데 화를 내며 상황을 바꾸려고 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나 자신’이 되자. 조금만 더 욕심을 내면 자신에게 떠오르는 부정적 감정을 스스로 삭이며 긍정적 행동으로 바꾸기 위해 애써 보자. 특히 당신이 리더라면 “내가 리더의 위치에서 더 발전하기 위해 어떤 행동이 필요하느냐”고 동료에게 물어봐 줄 때 구성원과의 거리는 한 뼘 더 가까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