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요? 우리도 집 사고 싶어요”, 재테크 판 흔드는 2030
부모보다 가난한 유일한 세대…코로나19로 경제 불안하자 ‘공격적 투자’ 시작
“욜로요? 2030도 집 사고 싶어요.”
20대 대학생 A 씨는 최근 ‘먹방’ 대신 ‘재테크 유튜버’에 푹 빠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반 청약통장을 ‘청년형’으로 바꾸는 법도 유튜브를 통해 배웠다.
유튜브로 공부한 내용으로 지난 5월 네이버 주식 200만원어치를 샀다는 그는 불안한 미래가 걱정돼 투자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행복주택도 ‘신혼부부형’이 그나마 살만하지 ‘청년형’은 대부분 5~6평짜리”라며 “어쩌다 10평짜리 매물이 청년형으로 뜨면 경쟁률은 ‘수백 대 일’로 치솟는다”고 말했다.
30대 승무원 B 씨는 지난 3월 삼성전자 주식이 4만5000원일 때 매수에 성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휴직 중인 그는 주식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B 씨는 “우량 기업은 언젠가 오른다는 믿음으로 ‘존버’하는 분위기”라며 “주변에 마이너스통장을 만들거나 대출을 받아 주식을 사는 지인도 많다”고 말했다.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에 주식 시장에 뛰어드는 2030세대가 늘고 있다. 부동산은 꿈도 꿀 수 없지만 주식은 저가 매수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의 투자, 뭐가 다를까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는 돈이 없다. 미디어에서 비춰지는 이들은 젊고 빠르고 화려하다. 모든 경제 트렌드를 이끄는 주축이지만 실상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유일한 세대’다.
밀레니얼 세대는 금융 위기 이후 힘든 고용 시장과 임금 정체 시기에 졸업했다. 치솟는 생활비와 기록적인 학자금 부채로 인해 졸업과 동시에 빚을 떠안았다.
밀레니얼 세대의 부모는 빠른 경제 성장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이룬 베이비붐 세대거나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386세대다. 이들이 한창 경제활동에 나섰던 1970년대 정기예금의 평균 금리는 연 20%를 오르내렸고 1980년대에는 연 14% 수준이었다. 지금은 꿈같은 이야기다.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은 최근 10억원을 넘으며 신기록을 세웠다. 20대 연평균 근로소득이 3024만원, 30대 연평균 근로소득이 4798만원인 상황에서는 그림의 떡이다.
경제 성장이 멈춘 시대에 살며 스스로 ‘헬조선’을 살아간다고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자조적으로 이야기하는 ‘노오력(노력을 강조)’의 배경이 여기에 있다.
역사상 가장 높은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의 가난은 더 억울하다.
88세대·N포세대로 불렸던 한국 2030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의 밀레니얼 세대가 다른 세대에 비해 소득이 적고 자산을 불리기 어렵다는 통계가 있다.
미국 세인트루이스 중앙은행은 밀레니얼 세대를 두고 ‘부의 축적을 잃어버린 세대’가 될 위험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또 경기 침체로부터 회복하기에 ‘가장 느린 집단’으로 분류했다.
이들이 재테크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적금과 예금이 제로 금리를 찍자 저축도 무의미해졌다.
전 세계 중앙은행이 헬리콥터 머니를 살포하며 유동성을 확대하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 저성장과 저금리 시대를 살던 이들에게 주식 ‘떡상’의 기회가 보였다.
코로나19 초반이던 1월과 2월 외국인과 기관이 빠져나가자 증시가 폭락했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던 개인 투자자들의 돈이 증시에 몰렸다. 이들은 넘볼 수 없을 만큼 높아진 부동산의 벽을 바라보는 대신 주식 ‘저가 매수’에 올인하며 높은 수익을 기대했다.
이제 전 세계 주식 시장은 밀레니얼 세대에 의해 출렁인다. 한국에서는 이들이 ‘동학개미’의 주축이 됐고 중국에서는 ‘청년부추’, 미국에서는 ‘로빈후드’라고 불리며 기존 금융 시장의 통설을 깨고 있다.
2030의 재테크 열풍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코로나19 이후 증시에 뛰어들고 있는 개인 투자자들의 과반이 밀레니얼 세대다. 한국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20~30대 연령층의 주식 계좌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 이상 늘었다.
국내 대형 증권사 중 한 곳인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올해 1~5월 신설된 계좌의 69.3%가 20~30대 소유다. 다른 증권사들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증권사 비대면 애플리케이션(앱)을 타고 유입된 2030세대가 ‘잠재적 고객’에서 ‘핵심 고객’으로 떠올랐다.
신규 주식 계좌 70%가 2030
외신도 한국 2030세대의 투자 열풍을 주목하고 나섰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2030 개인 투자자들이 소셜 미디어의 도움을 얻어 주식 투자에 뛰어드는 실태를 취재했다. 신문에 따르면 인구당 주식 거래 계좌 수는 한국이 미국의 2배에 달했다.
한국 2030세대의 가장 큰 특징은 투자 정보를 유튜브·카카오톡·텔레그램·밴드 등 소셜 미디어에서 얻는다는 것이다. 유튜브에 ‘재테크’나 ‘주식’ 등 키워드만 쳐도 증권사 대표, 애널리스트, 부동산 전문가들이 출연해 이해하기 쉽게 정보를 알려준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스스로 정보를 찾고 분석하며 유망 종목을 발굴한다. 주식 카페나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는 자신의 주식 상승률이나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밀레니얼 세대의 투자 성향은 기존 세대보다 공격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펴낸 ‘밀레니얼 세대와 86세대의 금융 행동 이해’ 보고서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과 금융 투자 경험이 낮은 데도 옵션·암호화폐처럼 고위험 투자에 더 열려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의 21.3%는 고위험 투자 상품인 선물·옵션·암호화폐를 보유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기성세대인 86세대의 보유 비율(11.5%)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주식·암호화폐·부동산에 몰렸던 2030의 투자처도 다양화되고 있다. 구하기 힘든 한정판 물건을 웃돈을 얹어 되파는 ‘리셀(re-sell)’ 역시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재테크다.
나이키 한정판 운동화는 웃돈 10배를 얹어도 구하기 힘들다. 올여름 스타벅스 매장 앞 긴 줄을 세웠던 ‘레디백’ 역시 리셀을 통해 최소 50%에서 최대 150%까지 비싸게 팔렸다. ‘희소성’을 무기로 인간의 욕구를 자극하는 재테크인 셈이다.
대표적 안전 자산인 ‘금’의 가격 상승도 2030이 주도하고 있다. 한국거래소가 지난 3월 말 국내 5대 증권사의 ‘금 거래 위탁 계좌’를 분석한 결과 보유자의 38.5%가 30대, 17.6%가 20대였다. 56%가 밀레니얼 세대인 셈이다.
이 때문에 명품 주얼리 브랜드에 손님을 빼앗겼던 서울 종로 귀금속 거리도 다시 북적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는 “증권 시장에 익숙한 젊은 층이 금을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들의 투자금이 어디에서 오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산이 부족한 20대 중 빚으로 자금을 확보해 주식에 투자하는 이들도 늘었다.
미래통합당 윤두현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을 통해 입수한 증권사 6곳(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키움증권)의 신용공여잔액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증가율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신용공여잔액은 증권사에서 돈을 빌린 총액이다. 이는 밀레니얼 세대가 직면한 경제상황을 보여준다.
2017년 3119억 원이던 20대의 신용공여잔액은 올해 6월 말 7243억 원으로 132.2% 증가했다. 같은 기간 30대(39.4%)와 40대(22.4%), 50대(15.1%)에 비해 증가율이 두드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