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부동산, 사람 속 뒤집어 놔 민심 떠나는 것 보여”
“이재명 지사와 연대 없다…킹메이커가 되려는 당 대표가 대선후보와 연대하면 당원들 납득 하겠나”
경기 군포에서 3선을 한 김부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2년 19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을 때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무모한 도전’이라는 시선이 적지 않았다. 그 때도, 2014년 대구시장 도전에서도 낙마했지만 2016년 20대 총선에선 보수 정당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자연스럽게 그는 대표적인 ‘영남권 진보 정당 대선 후보’로 부각됐다. 하지만 4년 뒤인 4·15 총선에서 지역주의 벽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이제 ‘킹’에서 ‘킹메이커’로 방향을 전환, 민주당 ‘8·29 전당대회’ 대표 경선에 나섰다. 그는 “이건(대선) 내 길이 아니라고 보고 차라리 킹메이커를 하는 게 내 정치를 마무리하는 데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선 출마가 아닌 당 대표 도전에 나선 이유는 뭡니까.
“4월 총선에서 떨어진 뒤 영남과 민주당 간 골이 너무 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 골을 메워야 우리 당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절박감이 들었습니다. 이 골을 메울 생각 없이 바로 대선으로 가면 뿌리가 다 무너질 것으로 봤죠. 대선 후보가 누가 되든 이들을 업고 뛰어 정권을 재창출한다면 내 정치적 몫이 있을 것으로 봅니다. ‘전국 정당’을 완성하는 당 대표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끝에 출마하게 됐습니다.”
다른 대표 경선 후보에 비해 강점은 무엇입니까.
“박주민 후보에 비하면 풍부한 선거 경험이 있고 이낙연 후보에 비하면 대선에서 우리 당의 취약 지역인 영남의 지지를 끌어낼 확장성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이낙연 당 대표는 이낙연 대통령을 못 만들지만 김부겸 당 대표는 이낙연 대통령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어떤 후보에 대해서도 강력한 보완재입니다. (2014년) 대구 시장 선거에서 40%를 득표했고 (2016년) 총선에선 62.3%를 얻어 전국 득표율 2위를 기록했습니다. 그 누구보다 선거 경험이 풍부합니다. 전국 253개 선거구의 역대 선거 이력과 출마자들의 정보가 내 머릿속에 입력돼 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표로는 적임자라고 자부합니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위기라는 말이 대표 후보들의 입에서도 나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봅니까.
“민심이 떠나는 것이 보입니다.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 경제가 영향을 미쳤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격탄을 맞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영업자입니다. 하루하루 삶의 칼날 위에 선 이들에게 정부의 말이 먹히겠습니까. 서민 경제에 주름살이 잡히고 부동산 문제가 사람 속을 뒤집어 놓은 것이죠.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고…. 환장할 노릇이죠. 지지율이 떨어질 때는 두 가지 양상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중도층이 떨어져 나가는 하락이고 다른 하나는 핵심 지지층이 이완되는 것이죠. 지금은 부동산 문제와 미투 사건으로 중도층이 떨어져 나가는 하락입니다.”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정책적인 성과가 중요해집니다. 국민들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지고 생활에 윤기가 돌아야죠. 기본적으로 청와대와 정부가 정책 결정권과 집행권을 갖고 있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당의 역할이 커져요. 또 정부는 공직 기강이 이완되기 마련입니다. 반면 당은 다음 선거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당이 정부를 다잡고 기존에 추진하던 정책의 성과를 내는 한편 새로운 정책을 준비해야 할 동기가 제일 강합니다. 대표가 되면 정책의 구체적 디테일까지 챙길 겁니다. 경제와 사회, 남북 관계 등 대부분 분야의 기본 구조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당이 정부를 챙기는 모습을 국민이 보게 될 겁니다. 또 민주당의 변화와 개혁을 위한 정당 혁신 방안을 준비하고 있어요. ‘새로운 백년을 책임지는 더 큰 민주당’을 위한 비전을 담을 겁니다.”
지난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한 뒤 이해찬 대표가 2004년 열린우리당 실패 사례를 교훈 삼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법 등을 여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면서 열린우리당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열린우리당 시절 허무한 몰락이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아 있지만 그 지적에 대해선 조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임대차 3법 등 부동산 관련 법을 두고 여권이 난타당했는데 조금 두고 봅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주거권 방어인데 법이 효력을 거두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임대차 3법은 부동산 시세 차익을 노리는 갭 투자를 막고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한 정책입니다. 물론 바로 전세 제도가 없어지고 월세 제도로 갈 것이라는 전망은 성급합니다. 장기적으로 우리보다 앞선 사회 시스템을 갖춘 나라들은 임대로 갔죠. 소득 수준에 맞는 임대 가격이 형성되는 사회가 온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전세 제도를 통해 목돈을 마련한 뒤 집을 장만하는 것이 꿈입니다. 이 꿈을 포기하라는 것처럼 들리니까 국민들이 화가 난 거죠. 일단 광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내 집 마련’ 꿈을 꾸는 사람들이 집 장만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으로 보고 무리 해 (집 사는데) 뛰어듭니다. ‘쿨다운’해야 합니다.”
정부의 공급 대책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정부가 재개발·재건축 개발 이익 90% 환수 방침을 내놓으면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는데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광풍을 가라앉히는 정책이 필요하죠. 공급 정책도 앞으로 더욱 과감하고 신속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책으로는 첫째, 청년과 무주택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집을 공급하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 같은 정책이 뒷받침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파격적인 수준의 대출 규제 완화와 금융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영국과 같이 집값의 10%만 부담하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존의 틀을 깨는 획기적인 대책이 나와야 합니다. 셋째,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장기 공공 임대 주택 공급이 확대돼야 합니다. 역세권과 도심의 유휴 부지에 대한 고밀도 개발과 함께 재개발·재건축 지역 용적률 상향 후 일정 부분 공공이 환수해 물량을 확보하는 방식 등에 대한 방안이 서둘러 추진돼야 합니다. 정부가 지난 8월 4일 발표한 수도권 주택 공급 대책의 핵심은 서울 강남 재건축 활성화를 겨냥한 ‘공공 참여형 고밀 재건축’이죠. 용적률 증가에 따른 기대 수익률 90% 이상 환수는 결코 과다한 부담이 아니라고 봅니다. 정부가 개발 이익의 90% 이상을 환수하는 사례는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있었죠. 당시 ‘친수구역활용에관한특별법시행령’으로 4대강 주변 지역을 개발해 얻는 이익의 90%는 국가가 환수할 수 있도록 한 선례가 있습니다.”
하지만 재건축조합들의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개발 이익의 90%를 환수한다고 해도 용적률 인센티브로 얻는 이익의 범위 내에서 환수하는 것이어서 조합으로서는 거부할 이유가 없어요. 민간 분양 주택에 공공 임대가 혼합될 경우 부동산 가치 상승에 나쁜 영향을 줄까봐 많이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부 우려도 있을 텐데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세금 중과에 대한 비판도 나옵니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의 처지는 다르죠. 어떤 사람은 생애 최초로 집을 구하려고 하고 오래된 집에 살다가 새집에 살고 싶어 하는 ‘건강한 욕망’도 있습니다. 정부가 세밀하게 시장 참여자들을 살피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으로 지나치게 불로소득을 많이 얻은 사람이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1가구 1주택자에게까지 세금이 늘어난데 대한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은 워낙 투기 수요 광풍이 부니…. 조금 있으면 방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쿨다운해야 합니다.”
민주당 소속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 추문 사태로 내년에 치러지는 보궐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낙마하는 경우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당규를 지켜야 하는 것 아닌지요.
“성 추문 의혹에 대해선 국민 여러분께 부끄럽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우리 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문화와 행태가 공직 사회에 투영된 결과죠. 민주당도 많이 부족했음을 반성합니다. 하지만 후보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봅니다. 대한민국 제 1, 2도시의 유권자 수만 1150만 명입니다. 후보 출마 여부는 정당의 존립 근거, 존재 이유에 관한 문제예요. 선거에서 후보를 내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아 공약을 실천하는 것이 정당의 본질입니다. 정치는 현실이고 명분만 내세울 수는 없습니다. 당원들의 뜻이 후보를 내는 것이라면 당 대표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당헌을 개정한 뒤 공천해야 합니다. 많은 비판이 쏟아지겠지만 책임지는 당 대표라면 욕을 먹더라도 현실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야 우리 당의 후보들도 여러 가지 비난에서 벗어나 제대로 미래통합당과 겨룰 수 있습니다.”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 명분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공공 기관의 지방 이전도 마찬가지 이유로 추진됐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서울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실질적인 지방 발전을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됩니다.
“행정수도 이전은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뤄져야 합니다. 서울은 이미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와 전 세계의 경제 중심 도시, 정보통신기술(ICT) 수도가 됐습니다. 중앙 정부가 서울이 가진 이런 장점을 계속 살려 나가는 일에도 관심을 갖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지방 균형 발전과 관련해선 내가 일찌감치 ‘광역 경제권 구상’을 내놓았습니다. 지금은 같은 광역권에서도 기초단체 간 ‘제 살 깎기’ 경쟁이 펼쳐지죠. 서로 소멸해 가는 처지에 더 많은 예산을 받으려고 중앙에 손을 벌리는 상황입니다. 적어도 같은 경제권 내의 여러 자치단체들끼리 서로 연대해 경제적 덩치를 키워 서울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게 골자입니다. 중앙 정부는 광역 경제권이라는 큰 그림 안에서 전략 산업 육성을 도와야 합니다. 산업과 연계된 인재 육성을 위한 교육, 인재의 원활한 수급을 위한 노동, 산업의 마중물을 부어줄 금융 정책이 서로 연계돼야 합니다.”
지방 발전을 위해선 기업 유치가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선 획기적인 지원책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비수도권으로 기업을 이전하기 위해선 과감한 세제·금융 지원이 필요합니다. 소득세·법인세 감면 등 인센티브 제공 기간을 늘려야 합니다. 기존 행정구역 단위를 넘어 같은 경제권역 내의 여러 개 자치단체가 광역 경제권을 형성해 자기 지역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기업에 필요한 물적·인적 시설을 갖추기 위한 중·장기적인 투자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헌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당 대표가 된다면 2년 임기 내에 개헌 논의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개헌 논의는 내년 4월 재·보궐 선거가 끝난 이후 시작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다만 여야가 개헌안 합의에 이르더라도 적용 시점은 여야 모두의 정치적 이익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의 한 시점으로 정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이재명 경기지사와의 연대설이 나왔습니다.
“특정 대선 후보와의 연대는 없습니다. 이 지사도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이죠. 내가 당 대표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오로지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확실한 정권 재창출의 길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킹메이커가 되려는 당 대표가 특정 대선 후보와 연대하면 당원들이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 지사를 만난 것은 전국 순회를 하면서 진행했던 통상적인 일정이었습니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40분 만났고 이 지사는 15분 만났는데 왜 김 지사와의 연대설은 안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특정 대선 후보를 위한 반대나 연대, 그런 정치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