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 전문 투자로 연 두 배씩 성장하는 그레이스케일
8월 기준 운용자산 50억 달러 돌파, 기관투자가 중심에서 일반 투자자까지 영역 넓혀
전 세계에서 운용 자산(AUM) 규모가 가장 큰 운용사는 어디일까. 정답은 6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있는 블랙록이다. 블랙록 다음으로 규모가 큰 곳은 AUM 순으로 뱅가드·UBS·스테이트스트리트·피델리티 등이 있다.
흥미로운 것은 글로벌 자산 운용사 중에서 디지털 자산 사업을 검토하거나 수행하지 않는 곳은 드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뱅가드는 최근 기업용 블록체인 솔루션 기업 심바이온트를 비롯해 뉴욕멜론은행(BNY멜론)·씨티은행 등 대형 은행들과 협업해 블록체인상에서 디지털 자산 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는 파일럿 테스트를 완료했다.
스테이트스트리트는 가상 자산 거래소 제미니와 협력해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피델리티는 최고경영자(CEO)의 전폭적인 지지로 글로벌 자산 운용사 중에서 디지털 자산 관련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다. 피델리티는 아예 디지털 자산만 전담으로 취급하는 피델리티 디지털 자산 홀딩스를 설립해 관련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피델리티는 자체적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하고 비트코인 수탁과 트레이딩 서비스를 고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또 피델리티는 최근 비트코인이 ‘가치의 저장’ 투자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논지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투자하는 비트코인
글로벌 운용사들이 디지털 자산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크게 신규 대체 자산, 투자자 연령대 변화(베이비부머와 X세대에서 밀레니얼과 Z세대로의 변화) 디지털 전환, 핀테크·테크핀 업체들의 금융업 진출 때문으로 추려볼 수 있다.
대형 자산 운용사들 사이에서 눈에 띄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신생 자산 운용사가 있다. 2013년 설립된 미국의 자산 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이다. 그레이스케일은 비트코인 투자 상품을 주축으로 하는 디지털 자산 전문 투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13년 비트코인 투자 상품을 론칭한 이후 그레이스케일은 이더리움, 비트코인 캐시, 리플, 이더리움 클래식, 디지털 자산 라지캡 등으로 투자 상품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길 원하는 기관투자가들은 거래소 해킹 리스크에 노출되거나 프라이빗 키를 직접 보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레이스케일의 서비스를 애용한다. 실제로 그레이스케일 고객의 주류는 기관투자가다. 2020년 6월 기준으로 그레이스케일은 40억 달러(약 4조7000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고 있고 2020년 8월 그레이스케일의 AUM은 50억 달러(약 5조9000억원)를 돌파했다. 그레이스케일의 2013년 설립 이후 AUM 연간 성장률을 환산해 보면 100% 이상이다. 다시 말해 그레이스케일의 AUM이 매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것인데 이는 자산 운용 역사상 전례 없는 수준의 성장 속도다.
한편 최근 들어 달러 인덱스가 하락하고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디지털 금’으로 불리는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JP모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 고령층은 금에 투자했고 젊은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투자를 선호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온라인 금융사 찰스슈왑의 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는 알리바바·마이크로소프트·넷플릭스 주식보다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투자 상품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레이스케일의 운용 자산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납득이 간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법이다. 그레이스케일은 최근 자사의 디지털 자산 투자 상품을 TV에 광고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자산 투자 층이 통상적으로 젊다는 점을 고려할 때 TV를 주로 시청하는 중·장년 투자자 층까지 공략하려는 심산이다.
최근 그레이스케일의 비즈니스가 호조를 보이자 배리 실버트 디지털커런시그룹 CEO는 “2013년에 우리가 비트코인 투자 펀드를 출시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우리를 미쳤다고 했다. 글쎄, 지금 우리의 모습을 봐라”고 말했다.
DCG 제국 만드는 배리 실버트
실버트 CEO는 원래 금융 투자업에 종사하는 은행가이자 세컨드마켓이라는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한 기업가였다. 세컨드마켓을 운영하고 있던 실버트 CEO는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보고 2013년 그레이스케일을 설립한 뒤 세컨드마켓 CEO에서 물러난다. 세컨드마켓을 나스닥에 매각한 실버트 CEO는 2015년 디지털커런시그룹(DCG)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 생태계에 투자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DCG의 미션은 더 나은 금융 시스템을 만들고 비트코인과 블록체인 회사들의 성장을 지원하는 것이다. DCG는 오늘날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이 된 코인베이스·리플·빗고·서클 등 글로벌 회사들에 일찍이 투자했다. 한국에서는 코빗과 스트리미(고팍스)에 투자한 바 있다. DCG는 그레이스케일(자산 운용사)뿐만 아니라 제네시스 트레이딩(브로커리지)과 코인데스크(미디어)를 자회사로 두고 운영하고 있다.
2013년은 열성적인 비트코인 지지자들도 비트코인의 미래에 대해 반신반의하던 때다. 그런 때 과감하게 투자하고 단시간 내 전 세계에서 운용 규모가 가장 큰 디지털 자산 운용사를 키워 내고 DCG 제국을 건설한 실버트 CEO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