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당적 지지 얻고 있는 ‘중국 때리기’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5월 기사에서 ‘닉슨 독트린’으로 냉전을 청산하며 가까워졌던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지정학적 대결을 벌이고 있다며 이런 거대한 전환을 ‘대결별(the great decoupling)’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세계 1, 2위 경제 대국이 실제로 결별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미국 내 대표적 중국통으로 꼽히는 윌리엄 오버홀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5월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허세(bluffing)’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반면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7월 15일 열린 홍콩 외신 기자 클럽 행사에서 “미·중 간 경제 디커플링은 가능한 게 아니라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단언했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가 미국 내에서 초당적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1월 3일 미 대선을 앞두고 불리한 판세를 흔들기 위해 ‘반중(反中) 정서’를 자극하는 측면도 있지만 중국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은 여야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실제 미 의회는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때리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안들을 만들어 냈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을 강행하자 미 의회가 홍콩의 자치를 침해한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할 수 있는 홍콩자치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게 대표적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도 ‘중국 때리기’에 가세했다. 미국 민주당은 지난 7월 바이든 후보의 대선 공약이 될 정강 정책 초안에 경제·안보·인권 등 전방위에서 중국을 압박하는 내용을 담았다. 올해 대선에서 누가 이기든 미국의 대중국 강경책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중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기업들의 경영 리스크도 커졌다. 예컨대 트럼프 대통령이 8월 6일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와 위챗을 운영하는 텐센트를 상대로 45일 뒤 미국 기업과의 모든 거래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자 홍콩 증시에서 텐센트의 주가가 장중 10% 넘게 폭락하며 시가총액이 80조원 이상이 허공에 날아갔다.
제프리 거츠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미·중 간 분리로 인한 정치적 위험이 글로벌 기업들에 핵심적인 우려 사항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키스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은 8월 6일 전화 브리핑에서 “한국에서도 틱톡 등 중국 앱 사용 금지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면서도 “이는 누구를 믿을 것이냐의 문제”라며 ‘중국 앱 차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앞서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부차관보는 화상 브리핑에서 LG유플러스를 거론하며 “(화웨이를 버리고) 믿을 수 있는 공급 업체로 옮길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LG는 국내 통신 3사 중 유일하게 화웨이 장비를 쓰고 있다.
미 국무부는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는 SK와 KT만 ‘깨끗한 업체’라고 부르고 있다. 미국은 ‘반중 경제 블록’인 ‘경제 번영 네트워크(EPN)’ 구상에도 한국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일본·호주·인도를 잇는 중국 포위망을 짜면서 한국도 파트너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면서 경제적으론 미국과 중국 모두로부터 이익을 얻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