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 있지만 원칙이 없다’…6·17 부동산 조치의 함정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요건,‘양질의 주택 공급’이라는 정책 대명제에 어긋나
외제 고급 스포츠카는 집값 이상으로 비싸지만 중고차는 절대 새 차 가격보다 비싸지 않다. 하지만 몇 십 년 된 낡은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는 (같은 브랜드의) 수도권 외곽의 새 아파트보다 훨씬 비싸다.
또 외제 고급 스포츠카는 강남 매장에서 사나, 수도권 외곽 지역의 매장에서 사나 가격이 비슷하다. 하지만 아파트는 같은 연식이라고 하더라도 지역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이런 아파트 가격 차이는 ‘건물을 얼마나 잘 지었느냐’가 아니라 그 건물이 깔고 있는 땅값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재건축을 통한 공급 강화 검토는 긍정적
이렇게 땅값이 지역별로 차이 나는 이유는 그 지역에 몰리는 주택 수요의 차이 때문이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은 지역(직주근접)이나 이들 지역과 접근성이 좋은 곳(교통) 또는 학군이 우수한 지역(교육), 그 밖의 여러 거주 환경이 우수한 지역(환경) 등에는 누구나 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주택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수도권 외곽 지역에 아무리 신도시를 많이 지어도 그 신도시보다 입지가 떨어지는 지역의 집값 안정화만 기대할 따름이다. 그러므로 입지가 좋은 곳에 집을 지을 땅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집을 지을 땅이라는 것이 무한정 생산되거나 수입될 수 없기 때문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서울 외곽 지역의 그린벨트를 해제해 거기에 집을 짓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가 서울시의 강력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그린벨트는 서울의 허파이고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지만 집값 안정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 지역에 공급되니 수도권 외곽 지역 집값에는 영향을 끼치겠지만 서울 인기 지역의 집값 안정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같은 강남구나 서초구라고 해도 입지가 좋은 지역과 그린벨트에 접하는 외곽 지역의 집값은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강남구나 서초구에 있는 그린벨트에 새 아파트를 공급한다고 하더라도 강남구나 서초구 인기 지역에 있는 집값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결국 대안은 그 인기 지역에 새 아파트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재건축 사업을 통한 공급 확대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그 지역의 집값이 급락하지는 않는다.
그동안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역 새 아파트 가격이 턱없이 올랐던 이유가 희소성이었던 만큼 이 희소성을 어느 정도 희석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나 정치권에서 재건축을 통한 공급 강화를 검토하는 방향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공급이라는 측면만 보면 재건축만큼 강력한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갈 길이 멀다. 특히 6·17 조치에 여러 독소 조항이 들어 있어 재건축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재건축 조합원 2년 거주 요건 신설이다. 현 정부 주택 정책이 실거주자 우대 정책인 만큼 그 단지에서 실거주하는 사람에게 새 아파트를 공급한다는 명분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들여다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6·17 조치의 목적이 재건축 단지에 투기적인 수요가 몰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만, 이 조치로 인해 재건축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려면 주택 소유자의 75%의 동의가 있어야 조합 설립 인가가 나고 80%의 동의가 있어야 사업 시행 인가가 난다. 다시 말해 20%가 조금 넘는 소유주만 반대해도 재건축 사업은 진행되기 어렵다.
그런데 평소에도 사람들의 생각이나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동의서를 걷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6·17 조치로 인해 실거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반대표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에 동의율이 더욱 낮아지는 것이다.
2년 실거주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현금 청산 대상이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손해다. 그러므로 이들은 정권이 바뀌어 법이 바뀔 때까지 계속 반대표를 던지면서 재건축 사업의 진행을 늦추는 전략을 쓸 것이다.
그러면 2년 실거주를 못하는 소유주들은 누구일까. 첫째,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소유주들이다. 다른 지역에서 생업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실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생업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그 단지의 집을 살 때 자금이 부족해 전세를 끼고 사는 소유주도 상당수 있다. 이들은 그 대신 집값이 더 싼 곳에서 전세로 살거나 월세로 사는 경우도 있어 현실적으로 전세금을 내주고 실입주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강화된 대출 조건에서는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전세를 내보낼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
투기 수요 막으려다 재건축이 무산될 수도
셋째, 임대 사업자들이다. 임대 사업자는 원칙적으로 임대용으로 취득한 주택에서는 거주할 수 없다. 임대용으로만 쓴다는 조건으로 등록한 것이기 때문에 실거주하게 되면 과태료 대상이 된다. 결국 임대 사업에 대한 법률과 이번 6·17 조치 사이에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 이유는 이들이 재건축 대상 단지의 아파트를 취득했을 때는 이런 규제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6·17 조치를 통해 실거주 요건이 생기면서 소급해 과거부터 소유했던 사람까지 적용됐다.
문제를 푸는 것은 간단하다. 6·17 조치 이후 취득 분부터 적용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6·17 조치 이후 재건축 대상 아파트를 취득한 사람은 그 리스크에 대해 사전에 인지한 상태에서 취득한 것이기 때문에 본인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전 규정에 따라 이미 취득한 사람들에까지 소급해 6·17 조치를 적용한다면 현금 청산 대상이 되는 그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손해를 보겠지만 이로 인해 재건축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2년 실거주 요건을 채운 다른 소유주에게도 피해가 가게 되며 더 나아가 요지에 양질의 주택을 공급해야 한다는 대명제에도 어긋나게 된다.
어느 분야든 일하지 못하게 규제를 만드는 것은 쉽다. 하지만 회사 일이든, 나라 일이든 일이 진행될 수 있게 여러 상황을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이 원하는 곳에 양질의 주택이 많이 공급될 수 있도록 정책의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