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은 불가역적 대세...오프라인 점포는 경험 공간 돼야"
장진석 보스턴컨설팅그룹 MD 파트너 인터뷰
“이제 비대면은 일상이자 불가역적인 대세”
오프라인 유통 업체가 새로운 생존 전략을 짜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유통업계를 둘러싼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추격자로만 느껴졌던 이커머스업계가 대세로 올라섰고 전통 유통 공룡들은 뼈를 깎는 체질 개선에 나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프라인이 주춤하는 사이 온라인 쇼핑은 더 빠르게 시장을 잠식했다.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2030은 물론 오프라인을 믿었던 5060까지 온라인으로 대거 유입됐다.
오프라인 역시 반격에 나섰다. 온라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객 경험’에 집중했고 비대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무인 매장 확대와 서빙 로봇·배달 로봇 상용화에 나섰다. 매장 일부를 외부에 임대하거나 풀필먼트 센터로 활용하는 등 수익 개선을 위한 작업도 한창이다.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반격은 통할까. 장진석 보스턴컨설팅그룹(BCG) MD 파트너에게 미래 오프라인 점포의 방향성을 물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비대면 소비 트렌드가 계속 이어질까요.
“비대면 소비는 고착화될 겁니다. 온라인으로 소비 주도권이 넘어갔고 오프라인을 위한 온라인(O4O : Online for Offline)의 의미도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오프라인을 중심으로 ‘온라인이 오프라인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의 문제였죠. 하지만 이제는 ‘온라인을 위한 오프라인(Offline for Online)’이 됐어요. 고객의 쇼핑 행위가 됐든, 콘텐츠 소비가 됐든, 사람들과의 네트워킹이 됐든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이 주류가 된 거죠. 이제 비대면은 사람들의 일상이자 불가역적인 대세가 됐습니다.”
아직까지는 무인 매장이 하나의 기술 실험 매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비대면 매장을 상용화하기 위한 조건이 있나요.
“고객 경험입니다. 지금까지 상용화된 무인 매장은 계산대에 직원이 없고 고객이 직접 계산하는 형태가 대부분이에요. ‘계산이 빠르고 편리하다’는 하나의 기준만 놓고 봐도 무인 매장이 유인 매장을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기계를 통한 서비스는 편리함에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무인 서비스로 가장 상용화된 ‘챗봇’ 기능만 봐도 아직까지 정확도가 떨어집니다.
오프라인 매장 역시 단순히 ‘계산’이라는 고객 경험 외에도 반품, 할인 안내, 물건 교환 등 더 많은 고객 경험이 존재하거든요. 이 모든 고객 경험이 사람과의 소통보다 편리해지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 한계점을 뛰어넘기 위한 경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인 매장이 고객 경험을 충족시키려면 고객의 모든 ‘동사’를 추적해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해요.”
비대면 시대에 중소 자영업자들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요.
“플랫폼에 올라타야 합니다. 현재 자영업자는 대략 400만 명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비율은 5~10%, 나머지 90% 이상은 중소 자영업자입니다. 이들이 과연 비대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어려운 문제예요. 올해 1분기 휴게 음식점의 폐업률은 66.8%로 최근 5년 새 가장 높았습니다. 중소 자영업자가 대기업처럼 기술을 개발하고 데이터 환경을 갖추며 투자하기는 불가능하죠.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기술의 낙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쿠팡·네이버·구글 등 많은 정보기술(IT) 업체들이 중소 자영업자의 비즈니스를 지원하고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커머스 업체로서도 대형 오프라인 업체와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중소자영업자를 많이 유입시키고 끌어오는 게 중요합니다. 중소 자영업자들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훌륭한 플랫폼에 올라타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대형마트는 오프라인 매장 실적 개선을 위해 매장을 풀필먼트 센터로 활용하거나 임대를 통해 수익 창출을 꾀하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변화를 통해 실적이 개선될까요.
“오프라인 공간을 활용한 수익 창출은 오프라인 매장이 갖춘 유일한 무기입니다. 하지만 아직 펀치력은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테넌트(임대 매장)를 늘려 부동산 수익을 창출함과 동시에 다양한 콘텐츠를 들여오는 방식은 이마트뿐만 아니라 다른 유통 업체들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롯데처럼 매장을 풀필먼트 센터로 활용하는 아이디어 역시 오랫동안 고민해 온 O4O의 개념이죠. 오프라인 공간 혁신은 단기간에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합니다. 오프라인 공간 혁신을 통해 실적 개선이 가능한지의 해답은 여전히 나와 있지 않아요.”
오프라인 공룡이 디지털 전환으로 체질 개선에 나설 때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인내심이죠. 현장에서 유통업계 임원을 만나면 ‘회사가 온라인 사업의 적자 구조를 어디까지 참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온라인 시장의 확실한 승리가 증명됐기 때문에 그런 논란은 잠재워질 것 같아요. 그러면 결국 경쟁력 싸움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시장점유율과 이익을 동시에 쥐고 갈 수는 없어요. 둘 중 하나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이커머스를 둘러싼 패권 싸움이 정리될까요.
“두각을 보이는 업체들 중 몇 개가 교통 정리를 할 겁니다. 데이터 플레이를 잘하는 기업과 데이터에 투자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기업이 살아남을 것 같아요.”
전통 유통업계와 이커머스업계 모두 온라인 시장을 잡기 위해 ‘물류’에 올인했습니다. 물류 다음은 어떤 경쟁력이 이들의 승패를 가를까요.
“데이터입니다. 데이터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어요. ‘찾았다’, ‘찍었다’, ‘봤다’, ‘샀다’, ‘나갔다’ 등 소비자의 모든 동사가 다 데이터가 되죠. 그 많은 데이터를 축적해 선호도와 관심도를 유추하고 은연중에 구매를 유도해야 하죠. 이 과정에서 커머스 업체들이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맥락에 맞게 유도해야 하거든요. 데이터 분석과 접목의 역량이 곧 경쟁력이 될 겁니다. 적은 돈의 게임은 아닙니다. 데이터도 물류 못지않게 상당한 투자가 전제돼야 해요.”
지난해 이커머스와 대형 유통업계의 인수·합병(M&A) 가능성이 대두됐습니다. 향후 유통업계 M&A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나요.
“항상 열려 있죠. 향후 이합집산이 활발하게 벌어질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과 재작년 알리바바와 아마존닷컴 등 해외 기업의 국내 진출 역시 끊임없이 대두됐습니다. 작년 온라인 시장이 1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코로나19 이후 200조원 시장은 거뜬히 넘을 겁니다. 200조원 시장으로 커지면 규모의 싸움이 되기 때문에 거래액 10조원 이하 업체들은 정리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어떻게 될까요.
“규모는 줄어들고 성격은 바뀔 겁니다. 물건을 사는 매장이 아니라 경험의 공간으로 변할 것입니다. 경험의 범주는 다양합니다. 쇼룸 형태든, 브랜드 철학을 전달하는 공간이든, 신사업을 전개하는 공간이든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장 수익 창출과 직결된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업의 구조가 바뀌듯이 소비 패턴에 따라 돈 버는 메커니즘에도 변화가 있을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