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트럼프 역전이냐, 바이든 굳히기냐’
민주당 바이든 후보 여론 조사에서 크게 앞서…위기감 커지는 트럼프 진영
미국 대선이다가온 가운데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이 각종 여론 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크게 앞서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인종 차별 시위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재선 가도에 비상이 걸렸다. 물론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결과는 그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코로나19 대응’ 등에 업고 격차 벌리는 바이든
미국 ABC방송과 워싱턴포스트가 7월 12~15일(현지 시간) 유권자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바이든 후보는 54%의 지지율로 트럼프 대통령(39%)을 15%포인트나 앞섰다. 특히 ‘코로나19 대응에서 누구를 신뢰하느냐’는 질문에선 바이든 54%, 트럼프 34%로 20%포인트 차이가 났다.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3월 25일 두 기관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선 ‘바이든을 신뢰한다’가 43%, ‘트럼프를 신뢰한다’가 45%였지만 그 사이 완전히 뒤집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나마 경제 분야에서 바이든 후보를 앞섰지만 격차는 2%포인트에 불과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NBC가 7월 9~12일 유권자 9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 여론 조사에서도 바이든 후보는 51%로 트럼프 대통령(40%)을 두 자릿수 차이로 제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6개 핵심 경합 주에서도 바이든 후보에게 밀린다.
미 CNBC가 체인리서치와 함께 7월 10~12일 4332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바이든 후보는 평균 49%, 트럼프 대통령은 평균 43%의 지지율을 보였다. 바이든 후보는 애리조나·플로리다·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등 5개 주에서 6~8%포인트 차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섰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만 바이든 47%, 트럼프 46%로 오차 범위(±1.5%포인트) 내 접전이 펼쳐졌다.
경합 주는 미 대선의 핵심 승부처다. 대부분의 주는 ‘민주당주’ 혹은 ‘공화당주’로 분명히 갈린다. 이 때문에 누가 경합 주를 잡느냐가 미 대선의 승패를 가른다. 이들 6개 주에 걸린 대통령 선거인단은 총 101명으로 전체 선거인단(538명)의 19%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때 이들 6개 주를 독식한 덕분에 전체 선거인단 수에서 힐러리 후보를 74표 차로 체지고 백악관에 입성했다. 지금 여론 조사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경합 주 대부분을 잃을 수 있고 정권을 내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최근 여론 조사에선 전통적 ‘공화당주’로 꼽히는 텍사스·조지아 주 등 남부 벨트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에게 밀린다는 여론 조사까지 나오고 있다.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7월 16일 자체 모델을 통해 올해 대선에서 바이든 후보가 승리할 확률을 93%,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확률을 7%로 예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 지지율이 재선에 실패한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점도 불안 요인이다.
갤럽이 6월 8~30일 실시해 7월 초 공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8%에 그쳤다. 1980년 이후 취임한 미국 대통령의 임기 4년 차 6월 지지율을 보면 1992년 아버지 부시가 37%, 1980년 카터가 32%였다. 이들은 모두 트럼프 대통령처럼 지지율이 40%에도 못 미쳤고 그해 11월 대선에서 패배했다.
반면 1980년 이후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은 비슷한 시기에 모두 트럼프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46%, 2004년 조지 W. 부시(‘아들 부시’)는 49%였고 1996년 빌 클린턴과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지지율이 각각 55%와 54%에 달했다.
불리한 여론 조사가 이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7월 15일 브래드 파스케일 선거대책본부장을 전격 경질했다. 그 대신 빌 스테피언 선거대책본부 부본부장을 새 본부장에 임명하며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캠프’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공화당 소속인 폴 라이언 전 하원의장의 고문을 지낸 브렌던 벅은 AP통신에 “이 캠페인의 문제는 대통령이 너무 많은 사람을 소외시켜 표를 줄 지지자 층이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라며 “이게 변하지 않으면 훌륭한 캠페인 운영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최대의 적은 트럼프’라는 지적이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는 이미 14만 명을 넘었고 누적 확진자도 400만 명에 육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코로나19를 평범한 감기인양 취급하고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말라리아 치료제를 ‘게임 체인저’인양 떠벌리고 전문가의 조언을 무시한 채 성급하게 ‘경제 재개’를 서두르면서 화를 키웠다.
백인 경찰의 강압적 체포 과정에서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으로 촉발된 인종 차별 시위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 차별의 상처를 다독이기보다 시위대를 ‘폭도’와 ‘극좌파’로 몰며 편 가르기에 몰두했다. 코로나19와 인종 차별 시위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모습에 지지층은 열광했을지 몰라도 상당수 중도층은 등을 돌렸다. 여론이 악화되면서 공화당 내에선 올해 대선은 물론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선거에서 전패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