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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철원 / 백마고지 전적지, 한탄강, 승일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625전쟁, 궁예, 태봉국, 백마부대, 현무암, 고석정, 임꺽정, 빨간마후라, 아치, 고석바위, 남북합작, 여행, 비무장지대

철원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만 해도 철원은 우리 국토의 남과 북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후삼국 시대에는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 도읍지였던 고장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철원은 통일을 꿈꾸는 미래의 땅으로, 기름진 철원평야에서 수확되는 오대미의 명산지로, 그리고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안보관광의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철원을 대표하는 안보관광지로는 철의 삼각 전망대를 비롯해 월정리역, 제2땅굴, 백마고지 전적지, 노동당사 등이 있다. 일반 여행지로는 한탄강, 고석정, 도피안사 등이 있다.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 백마고지 전적지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백마고지(해발 395m)는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 동안 중국군 1만4,000여명(포로 및 추정 사상자 포함), 우리 국군 3,4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격전지다. 당시 전투에 참여한 중국군은 정예부대인 제37군 소속의 3개 사단으로 편성되었으며, 이에 맞선 우리 국군은 제9보병사단(사단장 김종오 소장)이었다. 백마고지의 당시 이름은 ‘395 고지’였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로 인해 능선의 모습이 백마의 등처럼 바뀌었다고 해서 고지의 이름을 ‘백마고지’라 부르게 되었다.
백마고지 전투는 무려 12차례의 공방전을 벌인 끝에 우리 국군이 승리한 전승지다. 이 전투의 승리로 제9보병사단은 ‘백마부대’라는 이름을 받았다. 백마고지 전적지는 백마고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조성되어 있다. 백마 조형물, 위령비, 기념관, 전적비, 종각 등이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종각에서 백마고지가 선명하게 보인다.


역사와 전설의 흔적, 한탄강

한탄강은 북한 땅인 평강군 오리산(해발 453m)에서 발생한 화산포발(열하분출)로 인해 형성된 강이다. 오리산 옆에 있는 장암산(해발 1,052m)은 한탄강의 발원지가 있는 산이다. 한탄강 일대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현무암은 약 27만 년 전의 화산 폭발로 인해 생긴 것이다. 한탄강에는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 생긴 협곡도 많다. 그래서 여름에는 래프팅 명소, 겨울에는 얼음 트래킹 명소로 인기가 높다. 한탄강 일대는 지난 2015년에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고석정은 한탄강의 명승지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서 내려다보이는 한탄강과 고석바위 주변 풍광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고석정에는 조선 명종 때 활동했던 의적 임꺽정과 관련된 전설도 있다. 고석정 일대를 근거지로 삼았던 임꺽정은 관군이 잡으러 오면 민물고기인 ‘꺽지’로 변해 위기를 모면하곤 했다고 한다.


교훈과 숙제의 다리, 승일교

철원군 갈말읍 내대리와 동송읍 장흥리 사이의 한탄강 위에 놓인 승일교는 영화 ‘빨간 마후라’의 마지막 장면이 촬영된 다리다. 그런데 이 다리에는 기구한 사연이 있다. 남한과 북한이 각각 절반씩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다리를 놓던 중 남침을 하면서 공사를 중단했는데, 전쟁이 끝난 후 남한에서 절반을 완성한 것이다. 이 같은 연유로 폭 8m, 길이 120m의 승일교는 다리의 아치 모양이 절반씩 서로 다르다. 승일교는 그냥 지나치기 쉬운 오래된 다리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과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다리는 남북 합작으로 완공되었으나 분단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이 다리는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절반의 다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철원의 대표 문화유적지,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철원을 대표하는 문화유적지인 도피안사는 창건 유래가 특이하다. 신라 경문왕 때인 865년. 철원 지방 신도들의 시주를 받아 도선국사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을 조성했다. 이 불상을 ‘안양사’라는 사찰에 모시기 위해 옮기던 중 잠시 취하게 되었는데 그만 불상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주변을 샅샅이 뒤졌으나 모두 허사였다. 나중에 이 불상이 발견된 곳이 지금의 도피안사가 있는 자리다. 그래서 스님들은 비로자나불 부처님이 스스로 계시고 싶은 곳을 찾아가신 것이라 판단해 이곳에 사찰을 짓게 되었다. 도피안사에 봉안되어 있는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의 크기는 건장한 성인 남자의 체구와 비슷하다. 따라서 도피안사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친근하고 현실감 넘치는 불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 사실적인 신체 비례는 바라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금색 옷(금분)을 입고 있었으나 지금은 철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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