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TSMC, 미-중 줄타기 성공할까
인텔의 7나노 칩 상용 생산 지연 틈타 위상 키워 – 미국에는 공장, 중국에는 기술 지원
인텔이 주춤하는 사이 세계 각국이 반도체 부품을 위해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TSMC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TSMC는 지정학적 긴장이 급격히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미국 모두를 달래려는 대담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고 CNN이 최근 보도했다.
현재 최첨단 반도체 칩을 제조할 수 있는 기업은 전세계에 대만 반도체 제조회사(TSMC),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텔, 그리고 한국의 삼성 세 곳뿐이다. 최첨단 칩 제조는 최고 수준의 경쟁을 요하기 때문에 매우 귀하고 전문적이다.
지난 주 인텔이 7나노미터 칩 생산이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으며 생산을 아웃소싱할 수도 있다고 발표하자 TSMC의 주가는 또 다시 최고가를 경신했다. 첨단 칩은 더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할 수 있다. 나노미터 크기가 작다는 것은 그만큼 더 첨단 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TSMC는 미국 기업이 반도체 부품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업이다. 삼성도 7나노미터 칩을 생산하고 있지만 TSMC에 비해 규모가 적을 뿐 아니라 자신들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인텔은 주로 메모리 칩을 만들고 있어서 첨단 가공 칩 부문 생산은 아직 부족하다.
TSMC의 오늘날의 성공과 세계적인 칩 공급 업체로서의 지위는 위기의 시기에 이 회사를 매우 중요한 회사로 만들었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두 나라 모두 TSMC와 거래하며 인공지능, 5G, 클라우드 컴퓨팅 등 첨단 기술에 동력을 공급하는데 필요한 칩을 공급받고 있다.
미국과의 협조, 중국 비위 거스를 수도
이 회사는 미국 기업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고 있다. TSMC는 올해 초, 2024년까지 120억 달러(14조 3000억원)를 들여 애리조나에 5나노미터 칩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는 미국내에 군사용 및 민간 응용 분야에 사용되는 칩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해 첨단 칩 제조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에게는 일종의 개가였다.
그러나 TSMC가 미국의 칩 제조 능력 강화를 돕는 것은 중국의 비위를 거스를 수 있다. TSMC는 이미 중국 본토의 제조 공장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다. 중국이 TSMC와 대만에 보복한다면 시장의 혼란은 물론 회사에도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국제정치의 리스크를 연구하는 유라시아그룹(Eurasia Group)의 폴 트리올로 글로벌 기술정책실장은 "중국 난징과 상하이에 있는 TSMC 공장을 중국이 국유화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대만에서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대만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을 때마다 불만을 표시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중국과만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트리올로 실장은 "중국이 TSMC 중국 공장을 통째로 인수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TSMC가 애리조나에 공장을 지을 의향이 있다면 중국에도 공장을 지을 의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최대의 네트워크·통신 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중국에게 있어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가를 보여준다.
미국은 지난 5월, TSMC에게 화웨이에 칩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제재했다. TSMC는 비록 대만 회사지만 칩을 생산하는 데 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상무부는 TSMC 등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칩 제조사가 화웨이나 화웨이의 반도체 자회사 하이실리콘(HiSilicon)에 제품을 수출하려면 허가를 신청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미국이 화웨이를 글로벌 5G 네트워크에서 배제시키려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수출 허가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정학적 이유와 지리적 이유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다. 애플, 아마존, 퀄컴, 엔비디아 같은 회사들은 첨단 칩을 설계할 수는 있지만 이를 생산할 제조 시설은 갖추고 있지 않다. 그들은 이른 바 ‘공장 없는’(fabless) 칩 제조사들이다.
인텔은 자체적으로 반도체를 설계하고 조립할 수 있지만, 첨단 칩에 관한 한 TSMC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국기업연구소(AEI)의 브렛 스완슨은 “중국 본토 바로 앞 작은 섬에 첨단 반도체 생산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것은 항상 공급망의 걱정거리였다”고 지적했다.
"만일 대만에 쓰나미가 덮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것이 TSMC에 오히려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고 스완슨은 말한다.
"서방 세계가 대만을 지지하고 보호하는 이유가 단지 지정학적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대만의 이러한 기술력 때문이라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지요.”
칩 제조에 관한한 중국은 한참 뒤처져
대만이 중국과 기술적 노하우를 공유하면서 지난 몇 년간 수십만 명의 대만 기술자들이 중국 국내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도운 덕택에 지난 20년 동안 중국의 반도체 기술은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는 여전히 중국의 핵심 기술의 병목 현상으로 남아 있다.
유라시아그룹의 트리올로 실장에 따르면, 중국 국내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인 SMIC는 업계 선두주자인 인텔, 삼성, TSMC에 적어도 3~5년은 뒤처져 있다.
SMIC는 현재 10나노미터 칩을 생산하고 있지만, 선두업체들은 이미 7나노미터 칩을 생산하고 있으며, 5나노미터, 궁극적으로 3나노미터 칩으로 전환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7나노미터 칩을 만들려면 첨단 칩에 복잡한 패턴을 만들 수 있는 극자외선(EUV) 석판기(EUV lithography machines)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들 칩은 또 작동시키기도 매우 어려워 인텔마저 7나노미터 칩을 상용 생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SMIC의 문제는, 미국이 EUV 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회사 ASML에게 SMIC에 대한 EUV 장비 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장비는 ASML에 의해 설계되었지만 미국 지적재산권이 상당 부분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지정학적 상황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EUV 기술을 터득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SMIC가 첨단 칩의 상업적 단계까지 이르러면 적어도 2023년은 지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쯤에는 업계 선두주자들은 훨씬 앞선 단계에 있을 것이다.